[이재국의 야구여행] 느려도 1등 하는 세상! ‘희망의 모닥불러’ 유희관

입력 2015-09-04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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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으로 빠름을 제압하고, 공간으로 시간을 꺾는다. 두산 유희관은 가장 느린 공으로 가장 빠르게 승수를 쌓으며 KBO리그를 압도하고 있다. 낙천적이고 유쾌한 에너지로 1982년 박철순 이후 사라졌던 베어스의 토종투수 다승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스포츠동아DB

16승4패 승률8할…다승공동1위·승률 1위
시속 130km 불구 팔색변화구로 타자 제압
“공 느린 선수들이 저를 롤모델로 삼아 뿌듯”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올라프를 닮았다고 해서 ‘유라프’, 엉덩이가 아줌마처럼 펑퍼짐하다고 해서 ‘유줌마’, 불같은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를 ‘파이어볼러’라 부르는 데서 착안해 공이 느린 그를 두고 ‘모닥불러’라 부르기도 한다.

어느새 두산의 에이스로 우뚝 선 유희관(29)의 별명들이다. 주로 외모와 몸매, 느린 공에 빗댄 것들이다. 당사자 입장에선 민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쾌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는 즐겁게 받아친다.

“무플보다는 악플이 나아요. 무미건조한 것보다는 개성이 있는 게 좋잖아요. 팬들이, 특히 어린이들이 친근감 있게 다가올 수 있는 별명들인 것 같아요. 혹시 ‘바나나우유’라는 별명도 있는데, 그건 못 들어보셨어요?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전 요즘 바나나우유를 즐겨먹죠.”

그러고 보니 앞뒤로 불룩한 배와 엉덩이가 눈에 들어온다. 웃기만 하는 기자에게 기왕 별명 얘기가 나왔으니 할 말 다 해야겠다는 듯 거침없이 말을 이어간다.

“물론 ‘느림의 미학’이라는 좋은 별명도 있어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유희왕’이라는 별명이 참 좋았어요. 한번도 1등을 해본 적이 없는 무명 시절에 왕이라는 별명이 붙었거든요. 왕은 1등이잖아요.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낙천적이다. 유쾌하다. 느린공을 만만하게 보고 타석에 들어갔다가 삼진으로 쓰러지는 타자들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기자들도 무심코 인터뷰에 들어갔다가 그의 압도적 입심에 그만 배꼽을 잡고 쓰러지곤 한다.

압도적. 뛰어난 힘이나 재주로 남을 눌러 꼼짝 못하게 하는 것. 세상에는 그런 게 있다. ‘전설의 국보투수’ 선동열은 마운드에 오르기 전부터 압도적이었다. 몸만 풀고 있어도 상대 선수와 팬들은 지레 겁을 먹고 보따리를 쌀 준비를 했다. ‘전설의 코미디 황제’ 이주일은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압도적이었다. 그의 얼굴만 보고도 사람들은 미리 입을 헤벌쭉 벌리고 웃을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마운드에 선 유희관은 어디에도 압도적 느낌은 없다. 모두가 만만하게 보고 덤벼든다. 아무리 세게 던져봤자 시속 130km를 겨우 넘는 구속. 그런 유희관이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를 압도하고 있다. 3일까지 16승4패, 승률 0.800을 기록 중이다. 다승 공동 1위, 승률 단독 1위. 2개 부문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한때 프로야구를 주름잡았던 왕년의 명포수 박경완(현 SK 육성총괄)은 은퇴를 앞둔 2012년 퓨처스리그 경기에서 처음 만난 상무 시절의 유희관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처음엔 ‘에이, 130km도 안 되는 공으로 무슨 투수를 하고 있나’라고 생각하면서 타석에 들어갔죠. 그런데 당했어요. 옆(덕아웃)에서 보는 공하고 안(타석)에서 보는 공하고 완전히 다른 거예요. 속으로 ‘이것 봐라, 웃긴 녀석이네’라고 생각했죠. 두 번째는 익숙해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또 당했어요. 저도 모르게 ‘이 공, 아무나 쉽게 못 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느리다는 느낌은 전혀 없고, 너무 생소하더라고요. 최대한 공을 앞까지 끌고 나와 던지는데, 공 궤적이 그렇게 낮게 깔려 들어오는 건 처음 봤어요.”

스트라이크존 모서리에서 꺾이고, 가라앉고, 휘어지고, 솟구치는 변화무쌍한 ‘핀포인트 컨트롤’과 ‘팔색 변화구’. “왜 유희관의 공을 못 치냐”고 타자들에게 물어보면, 십중팔구 박경완과 비슷한 얘기를 한다.

초등학교 시절 무작정 야구가 좋아 전단지 한 장 보고 달려가 시작한 야구지만, 어릴 때는 키가 작아서, 커서는 공이 느려서 괄시를 받았다. 발이 느려서 못 달리는데 열심히 달리지 않는다는 억울한 오해까지 사기도 했다. 장충고 졸업반 때는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고, 대학 졸업 후 2차지명에서도 후순위인 6라운드에 호명돼 2009년 가까스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프로 입단 후 방출 소문도 들리고, 군복무로 잊혀진 시간도 있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유쾌하게, 열정적으로 도전했다.

가장 느린 공으로 가장 빠르게 승수를 쌓아나가고 있는 유희관은 어찌 보면 이 시대의 별종 투수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수많은 가능성과 다른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느림으로 빠름을 제압하고, 공간(컨트롤)으로 시간(스피드)을 꺾는다. 가진 자를 부러워하거나, 가지지 못한 것을 탓하기보다, 부족하나마 가진 것을 극대화하면 누구든 세상을 압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금 증명하고 있다.

“공이 느린 건 투수들의 가장 큰 고민이죠. 그런데 공이 느린 고등학생선수들 중에 요즘 저를 롤모델로 거론한다는 선수들이 생기더라고요. 스카우트들도 공 느린 투수라도 경기운영능력은 있는지 더 살펴본다고도 하고. 한편으론 뿌듯하고, 한편으론 제가 책임감을 가지고 더 야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열정은 즐기는 자에게서 나오는 에너지다. 풍랑을 겪어본 자만이 순항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왕’자가 들어간다고 ‘유희왕’이라는 별명이 가장 좋다는 그는 이제 진정한 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불사조’ 박철순 이후 사라졌던 베어스의 토종투수 다승왕을 향해!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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