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스러운 애틀랜타 터너필드 광장에는 영광스런 야구단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애틀랜타(미국 조지아주)|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4월1일(한국시간)부터 11일까지 박병호(미네소타), 김현수(볼티모어),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을 취재하기 위해 미국 동부지역을 다녔다. 워싱턴의 내셔널스파크, 볼티모어의 캠든야즈, 애틀랜타의 터너필드가 기자의 현장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세 야구장은 메이저리그의 과거(터너필드)-현재(캠든야즈)-미래(내셔널스파크)를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미국의 넓은 땅덩어리에 걸맞게 지역마다, 야구단마다 색깔이 달랐다. 그러나 그들이 한결같이 공유하는 가치도 체감할 수 있었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터너 필드 전경.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느리고 미로같은 애틀랜타 구장…레전드 조형물·동상 즐비
● 메이저리그 야구장의 과거-현재-미래
애틀랜타의 홈 터너필드는 올해가 마지막이다. 2017년 새로 개장하는 선트러스트파크 이주가 확정된 상태다. 터너필드는 애틀랜타 다운타운 남쪽에 위치해있다. 도심에 전철이 깔려있지만 터너필드까지 닿지 않는다. 교통 접근성이 해결되지 않고, 야구장 주변 치안문제까지 우려되자 구단은 아예 이사를 결정했다. 애틀랜타는 자금 확충을 위해 구단 지분을 상장하려는 특단의 조치까지 검토하고 있다. 이런 탓인지 2016년 애틀랜타는 시작부터 리빌딩 모드로, 1991년대부터 2005년까지 내셔널리그 동부지구를 지배했던 바비 콕스 감독 시절의 영광을 찾아볼 길이 없었다. 그래서 어쩐지 더 처량했다. 야구장에서 만난 남부 사람들은 친절했지만 매사가 느렸고, 야구장 내부는 미로와 같았다.
캠든야즈를 둘러보면 볼티모어의 역사 그 자체와 같은 영구결번 선수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볼티모어(미국 메릴랜드주)|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볼티모어의 캠든야즈는 1992년 건립 이후 야구장 건설의 ‘스탠더드’가 됐다. 도심 한가운데 지은 ‘모던 클래식’ 야구장이다. 그리 크지 않은 볼티모어에서 캠든야즈는 이너하버와 더불어 이 지역의 랜드마크였다. 4월5일은 미네소타와의 개막전이 열린 날이었는데, 아예 야구장 주변 교통을 통제해버리고 차 없는 거리로 만들었다. 불과 1년 전 흑인폭동이 일어나 이미지가 암울한 볼티모어에서 캠든야즈의 위상은 각별하다. 클럽하우스가 경기시작 4시간 전에 개방돼 일찍 나가지 않으면 경기 전 김현수를 만나기 힘들다.
내셔널스파크가 있는 워싱턴 네이비야드 지역은 치안이 썩 좋지 못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야구장을 보는 순간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2008년 개장한 이 야구장은 모든 것이 세련됐고, 현대적이다. 전 세계 스포츠 건축물을 통틀어 가장 친환경적인 건설작품으로 꼽힌다. 워싱턴이라는 지리적 특성에 걸맞게 대통령을 이용한 마케팅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클럽하우스에는 버락 오바마 등 역대 대통령의 유니폼과 자필 사인이 전시돼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오리올 파크 2016 MLB 개막전 전경.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모던 클래식’ 볼티모어 구장, 야구장 건축물의 교과서
● ML의 품격은 매뉴얼에서 나온다
미국에서 만난 우리 선수들을 일단 매혹시키는 것이 화려하고 잘 정비된 야구장이다. 그러나 이런 인프라를 관리하는 시스템의 영역에서도 메이저리그는 확고한 기준을 지니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비가 올 때 대처하는 매뉴얼이다.
내셔널스파크로 가는 길은 곧 워싱턴 야구단의 역사를 알아가는 길이다. 워싱턴DC|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는 워싱턴과 볼티모어에서 큰 비를 3차례 만났다. 한국 같으면 일찌감치 우천순연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일단 방수포를 덮고 기다렸다. 2일 미네소타-워싱턴전은 시범경기임에도 예정대로 경기가 열렸다. 5일 캠든야즈에서는 개막전 세리머니만 끝낸 뒤 비도 내리지 않는데 1회에 돌입하지 않고 중단시켰다. 한국 같으면 일단 경기를 시작하고, 비가 내리면 끊을 텐데 이들은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1시간 정도를 기다려 이번엔 비가 내리는데 방수포를 걷었다. 곧 그칠 것이라는 정보를 얻은 듯했다. 그렇게 3차례 경기가 중단됐음에도 기어코 경기를 마쳤다. 이 과정에서 볼거리는 야구장 직원들의 방수포 깔고 덮기 ‘신공’이었다. 20여명 직원들의 신속한 움직임은 3분 안에 방수포로 내야 전체를 덮었다.
워싱턴 내셔널스. 내셔널스 파크 전경.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친환경적인 워싱턴 구장…대통령 이용한 마케팅 눈길
● 역사와 전통은 메이저리그의 젖줄
터너필드 앞 광장에는 그동안 애틀랜타를 빛낸 영구결번 선수들을 기념하는 야구공 조형물과 동상이 줄지어 있다. 캠든야즈 매표소 앞 광장에도 볼티모어 레전드의 동상이 줄지어 있다. 특히 외야에서 본부석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광장 한가운데 브룩스 로빈슨 동상은 황금색으로 도금된 글러브를 끼고 있다. 워싱턴은 야구장 매표소로 가는 길에 구단 연혁을 조형물과 땅바닥에 그린 연대기로 표현했다. 메이저리그 팬들의 반응도 인상적이었는데, ‘야구를 알고 본다’는 실감이 났다. 취재 중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이었지만 개막식에서 김현수가 소개됐을 때, 캠든야즈에 울린 야유는 ‘볼티모어 팬들이 벅 쇼월터 감독의 손을 들어줬구나’는 정황증거였다. 그럼에도 끝까지 자신의 할 바를 다하는 김현수의 의연함은 더욱 돋보였다. 애틀랜타는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연패를 당하자 터너필드 홈팬들이 원정팀 세인트루이스를 응원하는 ‘조롱’을 보여줬다. 응원하는 팀이라도 아니다 싶으면 매섭게 비판하는 이곳 팬들의 정서를 읽을 수 있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군인과 소방수 등 제복 입은 사람들에 대한 경의다. 내셔널스파크에서는 3회가 끝나자 야구장에 초청된 군인들을 전광판에 소개했는데, 팬들은 물론 덕아웃의 선수들까지 기립해서 박수를 보냈다. 월드시리즈 우승팀 캔자스시티는 홈 개막전 세리머니의 주빈으로 소방수들을 초청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