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 피플] 승리를 부르는 ‘특급전차 김병오’

입력 2017-09-2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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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김병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결정적 순간 나서는 상주의 비밀병기
상대팀 진영을 휘저으며 공격에 선봉
“팀 강등전쟁서 반드시 승리로 이끌것”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등 현대전의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해지만 결국 전쟁의 마무리는 고지에 깃발을 꼽는 보병이 한다.

일선 보병부대에 힘을 실어주는 존재가 전차다. 지상전의 최강자로 통하는 전차의 화력지원이 뒷받침되면 보병은 좀더 수월하게 임무를 소화한다. K리그 클래식(1부리그)의 유일한 군인 팀 상주상무도 ‘특급 전차’가 있다.

다용도 공격수 김병오(28)다. 181cm·78kg의 체구다. 온몸이 무기다. 꾸준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단련된 단단한 몸놀림에 상대 수비진은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전투 초입부터 역량을 발휘할 수도 있지만 상주는 전차를 최대한 아껴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투입시켜 재미를 본다.

9월 16일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열린 광주FC와의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정규리그 29라운드 홈경기에서 김병오의 영향력이 증명됐다. 강등 라이벌과의 ‘승점 6점짜리’ 매치 업. 스코어 1-1로 팽팽한 후반 40분 상주 김태완 감독이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왼 측면 수비수 홍철을 빼고, 김병오를 투입했다. 화력 강화를 위한 선택이었다. 그가 들어가자 반전이 시작됐다.

상주 김병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동점골을 내준 뒤 꺾였던 상주의 흐름이 김병오의 화끈한 돌파와 함께 되살아났다. 투입 1분 만에 경고를 받았으나(결국 경고누적 3회로 9월 20일 전북현대 원정에 결장) 투지가 꺾이지 않았다. 추가시간 4분이면 충분했다.

후반 46분 동료 김태환으로부터 연결된 볼을 받은 김병오가 광주 수비진의 강한 압박을 뚫고 흘린 것을 주민규가 절묘한 슛으로 골 망을 흔들었다.

이후 어이없게 1골을 내줘 2-2 동점이 된 상황에서 김병오는 또 큰 역할을 했다. 후반 49분 광주 수비수 2명을 끌고 다니며 공간을 열어젖히자 거짓말처럼 김호남의 결승 골로 이어졌다.

“1분 1초를 뛰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내 모든 걸 불태운다. 출전시간이 중요하지 않다. 몇 분이든 증명해야 하는 것이 프로”라는 것이 김병오의 이야기다. 사실 그의 이력이 화려한 것은 아니다. 이름값이 높지도 않다.

아마추어 무대를 끝낸 뒤 김병오가 가장 먼저 발을 디딘 팀은 실업축구 내셔널리그 울산현대미포조선이었다. 이후 2013년부터 2년 동안 챌린지(2부리그)를 거쳤다. FC안양∼충주 험멜에서 2시즌을 보냈다. K리그 클래식은 지난해 처음 경험했다. 승격 팀 수원FC 소속이었지만 행복한 기억만을 안겨주진 않았다. 사력을 다했지만 생존하지 못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28경기에 출전해 4골·3도움을 올린 정도로는 자신을 불러준 조덕제 감독(사퇴)에 보답할 수 없었다. 곧바로 군 입대를 택했다.

수원FC 시절 김병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상주상무에서 역할은 바뀌었다. 붙박이 공격진이라기보다 조커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골잡이 본연의 임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격수는 공격 포인트로 말하면 된다. 정통 스트라이커에서는 살짝 벗어난 지원 사격에 열중한다. 그 역할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줄어든 출전시간이 아쉽기는 해도 불만스럽진 않다. “조금이라도 더, 길게 뛰고 싶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경기력이다. 최대치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늘 준비하고 있다.”

김병오는 지금 100% 몸 상태가 아니다. 8월 골반 부상의 후유증이 조금 남았다. 그래도 항상 긍정적으로 오늘과 내일을 대비해왔다. 당시 상주 프런트는 경북 문경 국군체육부대를 방문한 뒤 깜짝 놀랐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김병오가 이를 악문 채 웨이트 트레이닝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고나서다.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자기 관리는 당연하나 그만큼 강한 의지를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김병오는 누구보다 강등이란 단어를 싫어한다. 괴로움은 한 번이면 족하다는 생각이다. 공교롭게도 상주도 혹독한 강등 싸움에 휘말려 있다. “수원FC 경기를 챙겨보고 있다. 좋은 선수들이 있지만 올해 승격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강등이 결정된 순간의 악몽은 잊을 수 없다. 강등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계속 클래식에서 경기를 치르고 싶다는 점이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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