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축구가문의 영광 센추리 클럽의 불편한 진실

입력 2017-11-1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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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선수 시절 차범근(오른쪽). 사진제공|FIFA

울산에서 열린 한국과 세르비아의 평가전(14일)에 앞서 뜻 깊은 기념행사가 열렸다. 세르비아대표팀 주장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33)의 A매치(대표팀간 경기) 100경기 출전을 기념하는 축하 이벤트였고, 대표팀을 위해 헌신한 12년간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는 자리였다.

이처럼 축구에서는 A매치 100경기에 출전하면 영예로운 타이틀을 달아준다. 센추리 클럽(Century club) 가입이다. 오랫동안 국가를 위해 뛰면 받을 수 있는 축구 훈장인 셈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에 따르면, 현재 한국 출신은 9명이 등재되어 있다. 최다 출전은 136경기(10득점)의 홍명보다. 이운재(131) 이영표(127) 유상철(120) 차범근(119) 김태영(104) 이동국(104) 황선홍(102) 박지성(100) 등이 영광의 얼굴들이다.

1990년 2월4일 노르웨이와 친선전에 출전하며 A매치 테이프를 끊은 홍명보는 2002년 11월20일 브라질과 친선전을 끝으로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 13년간 태극마크를 달았고, 4회 연속 월드컵에 출전한 살아 있는 전설로 남았다. 현역 선수로는 이동국(전북)이 유일하게 포함된 가운데 대표팀 주장 기성용(스완지시티)도 97경기를 기록해 3경기만 더 채우면 한국선수로는 10번째로 영광을 누린다.

국가대표 선수 시절 허정무 .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그런데 해방 이후 70년간 한국축구에서 A매치 100경기를 뛴 선수가 고작 9명밖에 없다는 게 의아스러웠다. 박대통령컵, 메르데카컵, 킹스컵, 아시안컵 등 내가 어릴 적 봤던 그 많은 A매치 경기의 기록들이 모두 반영됐는지가 궁금했다. 대한축구협회의 집계를 보면 궁금증은 조금 풀린다. 축구협회에 따르면, 모두 13명이 A매치 100경기 이상 뛰었다.

FIFA가 인정한 9명 이외에도 김호곤(124) 조영증(112) 박성화(107) 허정무(103) 등 4명이 더 있다. 김호곤은 1971년 10월4일 올림픽 아시아예선 대만전에서 A매치에 데뷔했고, 1979년 3월4일 한일전을 통해 은퇴경기를 했다. 조영증은 1975년 3월19일 아시안컵 베트남전, 박성화는 1975년 7월29일 메르데카컵 말레이시아전, 허정무는 1974년 12월11일 킹스컵 인도네시아전을 통해 대표팀 데뷔전을 치른 뒤 10년 이상 한국축구를 위해 헌신했다.

이들은 센추리 클럽 가입요건을 갖췄으며, 축구협회는 조만간 FIFA에 정식 보고할 예정이다. 조광래도 현재 99경기인데, 빠뜨린 기록이 없는 지를 확인한 뒤 추가 보고한다는 계획이다.

국가대표 선수 시절 조광래. 사진제공|FIFA


차범근은 A매치 기록에서 손해를 많이 본 경우다. 고려대 1학년이던 1972년 5월7일 아시안컵 이라크전을 통해 대표팀 데뷔전을 치른 뒤 3일 뒤인 5월10일 크메르전에서 A매치 첫 골을 넣었다. 1979년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그는 멕시코월드컵에 출전해 1986년 6월11일 이탈리아전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축구협회가 집계한 차범근의 A매치 기록은 FIFA보다 17경기가 많은 136경기다. 여기에는 올림픽 예선 6경기(2득점)도 포함된다.

차범근은 1977년 6월26일 월드컵 예선 홍콩전에 출전함으로써 5년1개월 만에 100경기에 출전하는 대기록을 작성했는데, 이는 역대 최연소(24세1개월) 100경기 출전기록이다. 차범근의 기록은 발굴할수록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17경기 차이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풀이된다. 1980년대 이전까지 기록을 등한시한 것이 그 하나고, 두 번째는 올림픽 경기의 포함 여부다.

예전에는 동남아시아 등 국외에서 치러진 A매치의 기록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단순히 경기결과만 남겨놓은 게 많았다. 그러다보니 출전선수나 득점자를 찾는데 애를 먹는다. 축구협회는 실종된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예산을 들여 동남아 등지로 가 도서관 자료나 신문기사 등을 통해 확인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긴 했다. 하지만 아직도 빛을 보지 못한 기록들이 많다.

국가대표 선수 시절 박성화. 사진제공|한국축구100년사


연령제한(23세 이하)이 정해진 1992바르셀로나올림픽 이전까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대부분의 국가는 올림픽 예선에 성인대표팀을 출전시켰다. 실질적인 A매치가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FIFA는 월드컵 본선이나 지역 예선, 대륙별선수권, 성인대표선수로 구성된 대표팀간 친선전과 함께 올림픽의 경우 1948년까지의 본선 및 예선 경기만 A매치로 인정하고 있다. FIFA는 올림픽축구에 별 관심이 없던 유럽과 남미대륙의 경우를 기준으로 삼았는데, 이 지점에서 FIFA와 축구협회의 기록이 엇갈린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1992년 이전의 올림픽 출전기록까지 모두 정리해 보고한다는 계획이다.

축구협회는 베테랑 태극전사들의 잃어버린 A매치 기록을 복원하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노력해왔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아직 갈 길은 멀다. 더 많은 관심과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선배 세대의 땀방울을 기록으로 승화시키는 건 우리 세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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