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패자’ 정현이 이룬 것

입력 2018-01-29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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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오픈 테니스대회에서 메이저 4강을 달성한 정현이 2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지난 2주간 한국 테니스의 역사는 달라졌다. ‘기대주’ 정현(22·한체대·삼성증권 후원·세계랭킹 58위)은 전 세계 테니스가 주목하는 샛별이 됐다. 짧은 시간 호주에서 정현이 이룬 것은 실로 놀라울 정도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한국 테니스의 새 기록이다.

정현은 테니스 세계 4대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 테니스대회(총상금 약 463억원) 4강 진출이라는 큰 성과를 이뤘다. 로저 페더러(37·세계랭킹)와 만난 준결승에서 발바닥 부상으로 기권패하며 세계가 놀란 여정을 끝냈지만 ‘위대한 패자(敗者)’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먼저 정현은 한국선수로는 사상 최초로 메이저대회 8강에 올랐고 4강 진출이라는 새 기록도 세웠다. 호주오픈 직전까지 세계랭킹 58위에 올라있었던 정현은 단숨에 랭킹 포인트 720점을 확보해 역시 한국선수로는 최초 30위 이내 진입도 앞두고 있다.

정현-페더러(오른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누적상금 기록도 한국 테니스의 전설이었던 이형택을 뛰어넘었다. 정현은 호주 오픈에서 남자 4강으로 88만 호주 달러(약 7억5600만원)의 상금을 받는다. 또한 남자복식 16강 상금 4만9000달러(약 4200만원)의 절반을 받게 됐다. 이 대회에서만 올린 상금이 약7억7700만원에 이른다. 호주오픈 직전까지 약 18억1400만원의 상금을 받아 누적 상금은 약25억9100만원이 됐다. 이형택은 약 20년간의 투어로 약 235만 달러(약24억원)의 누적 상금을 기록했다.

세계 테니스도 새롭게 탄생한 아시아 기대주에 흥분하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랭킹 20위권에 진출한 아시아 선수는 단 4명뿐이었다. 그만큼 정현에 대한 기대는 남다르다. 특히 발바닥 부상이 3회전 경기 때부터 시작돼 매 경기 진통제 투혼을 벌인 것이 뒤늦게 알려지며 더 관심이 뜨겁다. 로이터 통신은 “정현은 클라크 켄트(‘슈퍼맨’이 변신 전에는 안경을 쓰는 것에 착안)처럼 안경을 썼지만 코트에서는 슈퍼맨처럼 경기했다”고 재치 있게 표현했다. 호주오픈은 홈페이지를 통해 “정현이 한국인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고 소개했는데 국내에 부는 뜨거운 테니스 열풍을 정확히 예측한 표현이었다.

정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정현은 최근 갈증이 있었던 글로벌 무대에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스포츠 스타로 새롭게 탄생했다. 20대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고 전국에 테니스 붐을 일으키고 있다. 당장 정현에 대해 광고시장이 큰 주목을 하고 있다. 스포츠 에이전트의 영입경쟁도 치열하다. 그러나 정작 스스로의 바람은 젊은 열정만큼 순수했다. 정현은 4강전이 끝난 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꿈같은 2주였다. 이번 대회에서 세웠던 목표는 인스타그램 100K(10만 명)를 만드는 거였다. 그 목표를 이뤘다’고 자랑스러웠다. SNS 팔로워 10만 명 달성의 기쁨은 모든 것을 상징하는 값진 성과다.

특히 현지 기자회견에서 전한 “제가 큰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로 인해 많은 분들이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열심히 노력하고 도전하면 꿈은 언젠가 이뤄진다는 믿음을 간직하셨으면 좋겠다. 저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메시지를 통해 함께 응원한 팬들 모두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도 큰 성과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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