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ㅣKOVO
대한항공 스포츠단 고문인 서용원 사장은 원정까지 배구단의 거의 모든 경기를 따라다닌다. 의무감 이상의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달 27일 대한항공은 대전에서 삼성화재와 ‘빅매치’를 벌였다. 이날도 서 사장은 현장을 지켰다.
변화는 대한항공이 세트스코어 3-0으로 이긴 직후 목격됐다. 여느 때처럼 대한항공 박기원 감독은 선수, 코치, 스태프들을 모으려 했다. 승리 직후, 늘 이뤄지는 ‘도열’을 위해서였다. 서 사장 등 임원들이 선수단에 격려 혹은 지적을 하는 자리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서 사장은 박 감독을 만류했다. 박 감독이 두 번 세 번 권해도 손사래를 쳤다. 도열이 생략된 덕분에 경기 직후 체력을 쏟은 선수들은 바로 스트레칭을 할 수 있었다. 서 사장은 자신이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어깨를 주물러주며 격려했다. 대한항공 배구단의 오랜 관례였던 ‘도열 문화’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앞으로도 도열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프로배구에서 ‘도열을 없애자’는 제안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좋게 보면 도열은 그룹 고위층이 배구단을 향해 대외적인 관심을 표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루트였다. 다만 외부에서 보기에 그 형식이 권위적으로 비쳤다. 마치 ‘구단 고위층은 선수단보다 우위’라는 것을 각인시키는 무대장치 같았다. 그렇다고 배구단 일개 실무직원이 “도열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건의하기도 어려웠다.
현대캐피탈을 제외하면, 도열 문화가 견고했던 배구계에서 뜻밖에도 보수적 기업문화로 알려진 대한항공이 변화를 준 것이다. 왜 서 사장이 도열을 없앴는지를 놓고, 대한항공 내부에서도 추측만 할뿐이다.
그 중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조원태 신임 구단주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라는 시각이다. 40대인 조 구단주는 KOVO 총재를 겸하고 있다. KOVO 직원들 사이에서 “(재벌가 출신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총재가 생각 이상으로 소탈해서 놀랄 때가 있다”는 말이 들린다. 조 구단주의 현장존중 마인드가 ‘프런트는 선수단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조력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이어진 셈이다.
조직에 권위는 필요하다. 조직의 비효율은 있어야 할 권위와 없어야 할 권위주의를 구분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권위는 아래를 향한 배려에서 나온다. 전력과 전략을 바꾸는 것은 오히려 쉽다. 정말 어려운 작업은 팀 문화의 변화다. 비로소 대한항공이 바른 항로를 찾은 듯하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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