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개막을 2개월여 앞둔 가운데 한국대표팀의 수비력에 대한 비판이 많다. 하지만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이제부터라도 전문 수비수 발굴 등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열린 한국과 폴란드의 평가전. 사진제공 | 대한축구협회
한국축구대표팀의 최대 불안요소는 수비다. 다른 쪽에 비해 불안한 게 사실이다. 지난해 7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신태용 감독은 수비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3월 유럽 원정에서도 같은 고민을 반복했다. 유럽으로 떠나기 앞서 신 감독은 “수비라인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다”면서 “(월드컵에서 만날) 스웨덴이나 독일은 신체조건이 우리보다 월등한데 밀고 들어왔을 때 수비라인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고민이다”고 했다. 특히 풀백의 제공권을 우려했다.
그런데 이 걱정이 평가전에서 현실이 됐다. 북아일랜드(1-2 패) 폴란드(2-3 패)전에서 수비(조직력)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특정 수비수에 대한 질타도 쏟아졌다. 게다가 3백과 4백 운영을 두고 감독의 전술 능력을 문제 삼았다. 솔직히 상대 공격을 받을 때마다 가슴을 졸여야했던 건 고문에 가까웠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귀국길에 신 감독은 “수비 문제를 느끼고 있다. 5월 최종 소집 때 조직력 훈련을 한다면 개선할 수 있다”고 했다. 3백 또한 플랜B로 가져가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했다. 당면 문제를 두고 감독이 자신 있다고 하는데, 그걸 갖고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와서 대표팀을 흔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왕 맡겼으면 끝까지 믿고 격려해주는 게 옳다.
다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대표팀 수비의 근원적인 문제는 수비수 개인의 능력 문제라는 점이다. 모자라는 능력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탄탄한 조직력이 필요한데, 그것조차 안 되면서 무너진 것이다. 특히 수비수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요소인 위치 선정에서 계속 엇박자가 나면서 불안감을 키웠는데, 내가 걱정하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대표팀의 수비력에 대한 비판을 수도 없이 해왔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대표팀의 수비력은 못마땅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4년 뒤 이맘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불안한 수비는 이번 대표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역대 월드컵에서도 감독들 대부분은 수비 때문에 힘들어했다. 1954년 이후 32년 만에 본선에 오른 1986년 멕시코월드컵부터 2014년 브라질월드컵까지 우리가 넉넉한 마음으로 지켜본 경우가 과연 몇 번이나 될까. 상대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뒤져 ‘선 수비, 후 공격’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감독들의 고민은 깊었다.
잠시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
1986년 멕시코대회의 상대는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이탈리아였다. 버거운 상대였다. 결과는 1무2패, 4득점7실점. 수비조직력은 엉성했다. 상대 공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5백이었다. 허정무 조민국 정용환 박경훈 조영증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선수들이 후방을 지켰지만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맨투맨 마크에도 한계가 있었다. 정보가 없어 상대 전력을 알지 못했던 게 아쉬웠다.
벨기에 스페인 우루과이와 한조에 속한 1990년 이탈리아대회에서는 대학 4학년인 홍명보가 깜짝 발탁됐다. 결과는 6실점1득점, 3패로 역시 예선탈락. 신예 홍명보와 박경훈 정용환 최강희 구상범 정종수 윤덕여 등이 수비진을 구성했지만,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상대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패착이 되풀이됐다.
월드컵에 4회 연속으로 출전하며 대한민국의 수비를 이끈 홍명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3회 연속 본선에 오른 1994년 미국대회는 2무1패(4득점 5실점)로 탈락하긴 했지만 과거에 비해 전력이 많이 안정됐다. 홍명보가 최후방을 지킨 가운데 신홍기 최영일 박정배 김판근 등이 바로 위에서 4백을 서는 형태였다. 스페인 독일 등 강호를 상대로도 기죽지 않았다. 다만, 선수들의 국제경험이 적은 건 여전히 풀어야할 숙제였다.
아시아 예선에서 역대 최고 성적(9승2무1패, 28득점 8실점)을 올린 1998년 프랑스대회는 첫 경기 멕시코전 역전패로 모든 게 꼬였다. 1무2패, 2득점9실점으로 예선 탈락.
안방에서 열린 2002년 대회는 4강이라는 성적이 말해주듯 가장 강력한 수비력을 보여줬다.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을 맞춘 홍명보-김태영-최진철의 변형 3백은 역대 최강이었다. 몇 개월간의 합숙과 수많은 평가전을 통해 정말 어렵게 만들어진 조직력이었다.
2002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토티와 경합을 벌이고 있는 최진철.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세대교체가 본격화된 2006년 독일대회에서는 노련한 최진철을 중심으로 3백과 4백을 번갈아 썼는데, 홍명보 은퇴 이후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부족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대회부터 4백의 가능성을 실험했다는 점은 눈에 띈다.
2010년 남아공대회는 한국축구의 저력을 보여준 대회였다.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1승1무1패를 기록하며 사상 처음 원정 16강에 진출했다. 대회 개막 직전 곽태휘가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지며 우려가 컸지만 센터백 조용형과 이정수가 센스 있는 플레이로 수비진을 이끈 게 큰 힘이 됐다.
브라질에서 열린 2014년 대회는 김영권과 홍정호가 붙박이 센터백이었고, 좌우에 윤석영과 이용이 뛰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수비조직력의 문제뿐 아니라 잇따라 나온 개개인의 실수가 화근이었다.
브라질 월드컵 알제리전에서 김영권-홍정호가 슬리마니를 막지 못해 실점하는장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우리는 매번 월드컵을 앞두고, 또는 월드컵을 치르면서 경기에서 드러난 문제점에만 골몰했다. 수십 년간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하지만, 그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접근 없이 감독 또는 선수에게 손가락질을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대표팀이 흔들리자 유소년 정책 등 장기플랜을 세우며 뿌리부터 튼실하게 한 독일이나 프랑스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통산 10번이나 월드컵 무대를 밟는 우리도 이제 그 쳇바퀴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이번 유럽 원정 평가전을 지켜본 한 축구인은 이런 말을 했다. “이제부터라도 전문 수비수를 발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됐으면 한다. 그게 우리가 월드컵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이다. 멀리, 길게 보고 준비해 나가야한다.”
제대로 된 선수육성이 먼저라는 얘기다. 수비 자원을 키워내는 데 관심을 두지 않고 그 과실만을 바라는 건 욕심일 뿐이다. 투자를 해야 한국축구도 살 수 있다. 그 축구인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우리는 단지 신체조건을 보고 수비수를 뽑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수비수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건 위치선정이다. 그런 유망주는 따로 있다. 인재를 발굴하는 작업, 그게 우리의 수비력을 강화하는 첫걸음이다.”
6월이면 러시아 무대가 펼쳐진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한국축구의 실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늘거나 주는 게 아니라 단지 운이 좋거나 나쁠 뿐이다. 이번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월드컵이 아니다.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월드컵은 열린다. 미래의 월드컵을 위해 지금 당장 전문 수비수 육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몇 년 뒤에도 수비 타령을 하고 싶진 않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체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