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윤성환.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AG의 여러 갈래 후폭풍 가운데 하나는 스트라이크존의 넓이를 둘러싼 논란이다. ‘타고투저’가 기승을 부리는 KBO리그의 스트라이크존이 AG와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좁다는 것이 그 근거다. 국제기준에 못 미치는 스트라이크존이 KBO리그의 타고투저를 부채질하고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사실 AG를 비롯한 국제대회의 스트라이크존이 넓다는 얘기는 과거부터 오랫동안 우리 야구계에서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특히 아마추어 국제대회 때면 빈번하게 언급됐다. 우리가 주심의 볼 판정에 불이익을 받았다는 피해의식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그랬다. 넓은 스트라이크존을 이번 AG만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러니 KBO리그와 AG의 스트라이크존 크기를 굳이 비교·분석해가며 번거로운 수고를 더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타고투저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여기 제시된 한 가지 간단한 수치를 검토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2018시즌 KBO리그와 일본프로야구의 개막전 선발투수들 중 토종투수들의 숫자다. KBO리그는 총 10명 중 고작 1명(삼성 라이온즈 윤성환)에 불과했던 반면 일본은 전체 12명 중 9명에 이르렀다. 이 수치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또 하나 표피적으로나마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KBO리그 투수들의 전체 평균자책점은 2014년 5.21로 사상 처음 5점대를 찍은 데 이어 2015년 4.87, 2016년 5.17, 2017년 4.97로 매년 4점대 후반에서 5점대 초반을 오갔다. 3.82를 기록했던 2012년보다는 무려 1점 넘게 급격히 치솟았다. 타자들의 능력이 빛의 속도로 향상된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2013년 NC에 이어 2015년 KT의 1군 합류를 앞두고 몇몇 야구인들은 이미 선수부족, 특히 투수부족 사태를 우려한 바 있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국 야구대표팀. 사진은 당시 일본을 꺾고 4강행을 이룬 선수들이 기뻐하는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한국야구는 극적으로 4강을 달성했다. 그 기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년 제2회 WBC 준우승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이승엽(은퇴),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정근우(한화 이글스),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등 타자들의 활약도 눈부셨지만 당시 갓 전성기에 들어섰거나 지금처럼 여기저기 아프지 않던 봉중근(LG 트윈스), 윤석민(KIA 타이거즈), 류현진(LA 다저스), 김광현(SK 와이번스) 같은 투수들의 힘도 컸다.
언젠가는 다시 등장하겠지만 그런 대형투수들이 지금은 나오질 않고 있다. 아니 육성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타고투저가 투수들의 씨를 말린 것인지, 팀마다 쓸 만한 투수들이 없어 타고투저가 심화된 것인지 원인과 그 해법을 놓고 KBO리그의 모든 구성원이 이제부터라도 머리를 맞대야 하지 않을까.
정재우 전문기자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