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터뷰] ‘대세’ 황인범이 털어놓는 태극마크 & 아산 & 대전 & 유럽

입력 2018-10-0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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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황인범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책임질 적임자다. 세밀한 공격력은 물론 수비력까지 갖춘 만능 플레이어로 벌써부터 국내외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월 7일 코스타리카와의 A매치에서 드리블 돌파를 하고 있는 황인범. 스포츠동아DB

누군가 말했다. 근래에 국내 축구인 중 수개월 만에 가장 큰 위상변화가 있었던 인물이 황인범(22·대전 시티즌)이라고. 맞는 표현이다. 실력에 비해 ‘미완의 대기’에 머물던 그는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AG)을 통해 확실한 ‘차세대 스타’로 떠올랐다. 세밀한 공격에 수비력까지 갖춘 만능 플레이어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한국축구에서 공격력이 뛰어난 테크니션은 꾸준히 배출됐지만 ‘수비까지 잘하는’ 선수는 많지 않았다.

4일 대전 신탄진 덕압축구센터에 위치한 대전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황인범은 구단 식구들 사이에서 ‘애늙은이’라 불린다. 겸손한 품성과 언변까지 두루 갖춘 터다. 그렇지만 굳이 속내는 감추지 않는다. 솔직담백하다.

“중고교 시절, 꿈이 있었다. ‘날 바라보며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는 어린 후배가 한 두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일 것’이라고.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시지를 종종 받는다. ‘형을 롤 모델 삼아 열심히 축구한다’는 내용이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누군가를 바라보며 성장한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흐뭇하다. 더욱 열심히 축구를 할 이유가 생겼다.”

황인범의 이야기를 키워드를 통해 풀어봤다.


● AG

“정말 간절히 준비했다. AG 이전과 지금, 날 둘러싼 환경과 인식이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대회 조별리그 2차전에서 말레이시아에 패한 뒤 1996년생 친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금메달은커녕, 최악의 상황을 걱정했다. 우리의 결론은 이랬다. ‘어쨌든 사력을 다하자. 물러설 곳이 없지 않느냐. 사력을 다한 뒤 후회하자’였다. 다행히 결과가 좋았다. 경기를 치를수록 지치기보단 팀이 완성된다고 느꼈다. 시상대 꼭대기에 섰을 때는 얼떨떨했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 주위에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만큼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졌다. 훈련과 경기를 위해 그라운드에 나설 땐 두 가지 격언을 떠올린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난 할 수 있다’를 조용히 중얼거린다. 긴 축구인생의 한 장이 막 끝났을 뿐이라는 걸 잘 안다. 꿈과 목표가 아직 많이 남았기에 오늘에 만족할 틈이 없다.


● 태극마크

“파울루 벤투 감독님의 첫 부름을 받은 것은 AG기간이었다. 서울과 인도네시아의 시차가 2시간이다. 조금이라도 기대했다면 대한축구협회 공지를 살폈을 거다. 하지만 난 숙소에서 잠자고 있었다. (김)민재(전북 현대)가 우리 방으로 와서 ‘축하한다’고 말해서 확인했다. 내 이름을 직접 봤을 때 너무 신기했다. 연령별 대표팀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황인범은 K리그2 아산 무궁화 소속으로 올 시즌을 준비하며 마지막 목표로 A대표팀 승선을 바랐다. AG가 우선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기회가 찾아왔다. 마냥 좋아할 틈은 없었다. 대신 부모님이 기뻐했다. 비가 쏟아진 8월 어느 날 출근길, 황인범의 부모님은 지인의 축하전화를 받고 펑펑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A매치 데뷔도 예상보다 빨리 이뤄졌다. 코스타리카~칠레로 이어진 9월 A매치 시리즈에 전부 교체 출전했다. 출전시간은 총 35분여에 그쳤지만 번뜩이는 플레이로 호평을 받았다. 우루과이(12일·상암)~파나마(16일·천안)와 격돌할 10월 A매치 2연전에도 호출을 받은 황인범은 “두 번째 A대표팀 합류다. 국가대표의 자부심은 있지만 ‘이제는 국가대표답다’는 말을 듣고 싶다. 아직 부족하지만 조금씩 채워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황인범. 스포츠동아DB


● 아산 무궁화

“지난해 12월 의경에 입대한 뒤 스스로 의구심이 컸다. 군사훈련으로 흐트러진 폼이 언제 올라올지에 대한 고민도 상당했다. 팀 내 쟁쟁한 선배들도 많았다. 내로라하는 국가대표 자원들이었다. 아산은 A~D팀으로 구분했는데, 나는 B·C팀원이었다. 실망하지 않았다. 그만큼 더 노력했다. 박동혁 감독님이 3차 동계훈련부터 A팀에 불러주셨다. 신뢰와 기회를 얻으며 실전을 소화했고, AG까지 다녀왔다. 요즘 아산의 상황이 걱정스럽다. 체육단 운영 포기와 의경 축소 이야기는 접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일이 터지리라곤 상상 못 했다. 우리(대전)와 승격경쟁을 하지만 아산 문제는 한국축구 전체의 손실이다.”

황인범은 대전에 몸담은 3년과 아산에서 뛴 9개월에 같은 의미를 부여했다. “강력한 유대감과 소속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AG 우승으로 조기전역의 혜택을 얻어 박 감독과 전우들에게 더욱 미안하다. 전역식 때 많은 눈물을 흘린 것도 그래서다”라고 얘기했다.

다가오는 주말 대전은 안방으로 아산을 불러들인다. K리그2 선두(아산)와 3위의 대결이다. 올 시즌 전적은 1승1무1패. 승자는 둘이 될 수 없으나 긴 시즌이 끝난 뒤 모두가 활짝 웃는 미래가 있기를 희망하는 황인범이다.

● 유럽진출

“유럽 빅 리그 진출은 많은 선수들의 꿈이다. 올 시즌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 다만 유럽 진출까지의 기다림은 짧았으면 한다. 기회가 언제 닿을지 모르지만 러브콜이 있으면 무조건 도전할 생각이다.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뛰며 묵묵히 기회를 기다리겠다. 내 임무와 역할을 하지 않고 꿈을 이룰 수는 없다.”

2016년 후반기에도 황인범은 유럽 명문클럽의 관심을 받았다. 벤피카(포르투갈)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독일) 등이 접촉해왔다. 진전된 부분도 있었지만 최종 협상으로 끝내 이어지지 않았다. 그 때 그는 결심했다. ‘내가 먼저 타진하는 유럽진출이 아닌, 팀이 나를 찾도록 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한층 성숙해졌고, 병역 문제까지 해결한 지금이 적기다. 선수와 계약기간이 2년 남은 대전도 충분히 남는 장사다. 유럽축구 겨울이적시장이 끝날 내년 2월, 황인범은 어디서 어떤 유니폼을 입고 있을까.

대전|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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