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 박태준 명예회장의 축구사랑은 각별했다. 그의 선견지명 덕분에 포항 스틸러스는 명문구단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다. 육성을 중시한 박 명예회장은 축구유망주 발굴에도 앞장섰다.
그는 한국축구의 선구자였다. 국내 최초의 전용구장과 클럽하우스를 만들었다. “축구를 하는 나라에 제대로 된 축구장 하나는 있어야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1990년대 축구기자들이 포항 출장을 선호한 이유 중 하나는 국내 유일의 전용구장(스틸야드)에서 관전하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국내 처음으로 유스시스템을 도입한 선견지명도 평가할만하다.
불도저 같은 스타일로 제철소를 만들었지만, 축구선수들을 대할 때는 살가웠다. 이름깨나 있는 선수치고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그 중에서도 최순호(포항 감독)와의 인연은 특별했다. 고교 때부터 시작된 인연은 평생을 갔다.
청주상고 시절 최순호의 꿈은 포항제철 입단이었다. 당시 그곳은 국가대표선수가 넘쳐났던 최고의 팀이었다. 가능성을 인정받아 2학년 말 입단에 합의했고, 3학년부터는 포항을 오가며 선배들과 함께 훈련했다. 그 때 박 회장을 처음 봤다. “귀인처럼 느껴졌다”고 최 감독은 회상했다. 이어 “회장님은 우선 지원을 충분히 해주는 등 여건을 만들어준 다음 성과를 내라고 주문하셨다. 그런 분위기 덕분에 포항에는 언제나 최고의 선수들이 몰려들었다. 그곳에 10대인 내가 들어갔다. 햇병아리인 내가 거기서 성장을 해 장닭이 됐으니 회장님께서 애정을 주신 것 같다”고 했다. 최순호는 1980년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등 포항 입단 이후 폭풍 성장을 거듭하면서 한국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었다.
이미 다 자란 선수보다는 미완의 재목이 커 가는 모습에 흐뭇해한 건 박 회장의 의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구단이 선수를 육성해 인재를 만들어야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한 축구인은 “이미 완성된 선수는 생산의 성격보다는 소모의 성격이 강하다고 회장님은 생각하셨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최순호 현 포항 감독은 고교 시절부터 일찌감치 포항에서 훈련하며 최고의 스타로 성장했다. 스포츠동아DB
포항에서 럭키금성(현 FC서울)으로 이적한 뒤 다시 포항으로 복귀한 사연이나 현역 은퇴 후 공부를 하겠다며 떠난 프랑스 축구유학, 그리고 긴 공백 끝에 1999년 포항 코치를 맡게 된 배경도 박 회장의 뜻이었다고 최 감독은 전했다.
코치와 감독대행을 거쳐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포항 지휘봉을 잡은 그는 박 회장의 뜻대로 유스시스템을 도입했다. K리그 구단 중 최초다. 최 감독은 “회장님은 항상 시스템과 매뉴얼을 강조했다”고 기억했다. 주먹구구로 하지 말라는 가르침인데, 그게 유스시스템의 핵심이다.
지금이야 모든 구단들이 연령별 유소년 팀을 꾸리고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초·중·고교를 잇는 육성시스템을 도입한다는 건 축구 선진국에서나 하는 먼 나라 얘기였다. 당장 효과를 보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포항은 미래를 보고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많은 유망주가 포항을 거쳐 가며 선수육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다른 구단 감독과 축구협회 행정가로 활동하다가 2016시즌 말미에 친정팀 포항으로 돌아온 최 감독은 강등 위기의 팀을 구했고, 지난해 7위, 올해 상위스플릿에 안착시켰다. 현재 K리그1 4위로 내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출전 가능성도 열려 있다.
그는 최근 재계약했다. 구단은 포항의 전통과 정신을 가장 잘 아는 감독이라고 평가한다. 그건 아마도 유스시스템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박 회장의 철학이 뿌리내리는데 최 감독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유스시스템을 통해 인적 자원 육성은 물론이고 구단 행정과 소통을 원활히 해 구단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게 내 역할”이라는 최 감독의 말에서 박 회장의 향기가 느껴진다.
최 감독 재계약을 통해 박 회장의 모습을 떠올린 건 육성이라는 철학을 공유하고 있는 두 사람의 인연 때문이다. 속도는 조금 느려도 방향은 올바르게 가고 있는 포항이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체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