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김세영. 스포츠동아DB
대한배구협회는 2019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 참가하는 여자대표팀 예비엔트리(30면), 후보엔트리(25명), 강화훈련엔트리(18명)를 각각 발표했다.
올해 모든 배구팬의 소망이자 반드시 해야 할 목표가 2020도쿄올림픽 본선진출이다. 국제대회에서 한국여자배구의 위상을 올리는 것이 V리그의 흥행과 직결되기에 한국배구연맹(KOVO)의 6개 여자구단도 최고의 전력을 구성할 수 있도록 총력 지원할 생각이지만 더 깊이 파고들면 여기저기 파열음이 들린다.
● 아들의 행복과 대표팀의 의무 사이에서 고민하는 워킹맘
우선 가장 중요한 선수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보이지 않는다. 국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부탁할 수는 있지만 강요할 수 없는 것이 대표선수다. 28일부터 순차적으로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 입촌 해서 훈련에 들어가는 선수 가운데 흥국생명 김세영이 있다. 38세의 그는 2008베이징올림픽 예선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물러났다. 2012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출산과 육아를 위해 대표팀 은퇴를 결정했다. 엄마선수로 2014~2015시즌 V리그 컴백한 김세영은 두 번 다시 대표팀의 부름을 받을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라바리니 감독은 그를 테스트해보고 싶은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지목했다.
국내 사정에 어두운 감독으로서는 최대한 많은 선수들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겠지만 김세영의 사정도 딱하다. 워킹맘인 그는 다가올 시즌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치려고 한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엄마의 손길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에 유니폼과도 작별할 생각이다. 시즌 때 아들과 함께 할 시간이 모자랐던 그는 휴가를 맞아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차에 대표팀 소집통고를 받았다. 아무리 조국을 위한 봉사라 하더라도 한 가정과 개인의 행복을 앞설 수는 없다. 다른 나라도 오랫동안 대표팀을 위해 봉사한 베테랑에게는 은퇴의 자유를 준다. 우리도 대표팀 구성을 앞두고 최소한 선수들의 형편과 출전의사는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한데 어찌된 일인지 라바리니가 원했다는 이유 하나로 일방통행을 했다.
한국 여자 배구대표팀 스테파노 라바리니 신임 감독. 사진제공|대한배구협회
● 구단과 협의 없이 보냈던 훈련지시 문자
일방통행은 또 있었다. 몇몇 여자선수들은 한국-태국 올스타전 때 여자대표팀 관계자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대표팀에 들어갈 예정이니 몸 관리 잘하고 알려준 훈련프로그램을 소화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사실을 비밀로 하라”는 내용도 있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이 문자메시지는 대회에 참가한 모든 선수들에게 공유됐다. 구단과 사전에 상의도 없이 협조도 구하기 전에 선수들에게 사실상 훈련지시를 내린 것을 구단이 어떻게 받아들여 할까. 냉정하게 말하면 선수는 계약을 맺은 기간동안에는 구단의 자산이다. 협회의 것이 아니다. 남의 귀중한 자산을 빌려서 쓸 때는 먼저 상의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 또한 한국물정을 모르는 라바리니 감독의 요청이라고 하지만 협회와 여자대표팀 누군가는 나서서 제대로 된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
대표선수들의 경기참가 일정도 걱정스럽다. 이재영(흥국생명)은 VNL예선(5주간) 내내 포함됐다. 그는 지난해부터 한 번도 대표팀 경기에 빠지지 않았다. 이렇게 혹사하다가 언제 부상이 찾아올지 걱정스럽다. 그와 비슷하게 출전이 많았던 도로공사 박정아는 이미 수술에 들어갔다.
몇몇 잘하는 선수만 혹사하지 말고 좀더 다양한 선수를 출전시켜 대표선수 기용의 폭을 넓혀서 선택과 집중을 하자는 것이 그동안 팬들이 배구협회에 요구했던 것이다. 외국인감독 체제에서는 뭔가 달라질 것이라 기대했는데 지금까지는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 라바리니 감독은 만병통치약일까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금 많은 선수들이 대표팀의 부름을 두려워한다. 수술과 재활 사이에서 고심하는 몇몇 선수들은 ‘차라리 나도 지금 수술을 받을까’ 생각도 한다. 지금 많은 선수들의 몸은 정상이 아니다. 기계가 아닌 이상 쉬어줘야 한다. 몸이 자산인 선수들은 자신의 미래인생도 걱정한다. 그래서 최소한 대표선수라면 자발적인 참가의지를 만들어내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외국인감독 시대에도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라바리나가 원한다는 이유만 댄다.
물론 대한배구협회 쪽에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박기주 여자경기력향상이사는 “올림픽티켓이 목적이니까 올해는 국가를 위해 희생해줬으면 좋겠다. 지금은 감독이 해달라는 것을 모두 다 해주겠다는 생각이다. 그런 다음에 결과를 봐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외국인 감독에게 할 말이 없다. 선수기용은 전적으로 감독에 맡겼다. 일단 팀에 합류해서 건강체크를 한 뒤 몸이 좋지 못한 선수들은 따로 대책을 세울 것으로 안다”고 했다.
누구의 생각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라바리니가 좋은 감독이라고 기대는 하지만 만병통치약일지 여부는 모르기에 기자는 걱정도 한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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