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사진제공|KOVO
한국전력은 6월 30일 마감됐던 선수등록기간에 다른 팀들로부터 불만의 소리를 많이 들었다. 재계약 연봉협상에서 후하게 선수들을 대해주는 바람에 다른 구단들의 재계약협상이 상대적으로 어려워졌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연봉협상은 정해진 틀이 없다. 선수와 구단의 필요와 감독의 판단에 따라 선수의 가치가 결정된다. 시즌 성적과 다음 시즌 기대치, 구단과 코칭스태프가 평가하는 선수의 역할 등이 모여서 연봉이 정해지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배구는 같은 한 점을 놓고도 세트 시작과 세트 마무리에 따라 평가가 다른 것처럼 선수평가도 마찬가지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득점을 하고 좋은 수비와 연결을 하고 블로킹을 했는지 등에 따라 그 가치는 천차만별이다.
요즘은 예전보다는 차츰 성적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추세다. 경기력이 떨어지는 선수에게는 성적이라는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지만 기량이 입증된 스타급에게는 기준이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운동은 잘하고 볼 일이다. 사실 못하는 선수에게만 더욱 불리한 조건이라면 연봉협상의 공정성을 의심받는다. FA재계약을 앞둔 팀의 주축선수가 부진했다고 무리하게 연봉을 깎으려는 구단도 없다. 그렇게 하면 초보다. 이적 보상금과 보상선수까지 생각해서 성적과 관계없이 올려주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성적 이외에도 다양한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하기에 연봉협상이 어렵다.
한국전력이 이번에 선수들에게 후했던 속사정이 있었다. 팀내 최고연봉 선수였던 서재덕은 8월에 입대한다. 최석기, 권준형, 박성률, 김진만, 이승현, 이재목, 이광호 등이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면서 팀을 떠났다. 고액연봉 선수들이 나가면서 샐러리캡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 최소소진율을 고민할 정도였다.
게다가 구단은 지난 시즌 최하위 성적이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선수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큰 역할을 해줘야 할 외국인선수가 빠진 가운데 성적부진의 책임을 꼭 선수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 또 팀 성적과 관계없이 잘해준 선수에게는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한다고 봤다. 그 생각은 프로페셔널답다. 그 덕분에 선수들과의 재계약은 쉽게 끝났다. 사실 한국전력이 정한 선수들의 연봉이 공정가격을 넘는지 여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만일 이번에 질책보다는 격려와 배려를 해준 결과가 새로운 시즌의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다면 한국전력은 연봉협상을 잘 마무리한 것이다.
여자부 인삼공사도 비슷한 선택을 했다. 시즌 최하위를 했지만 선수 어느 누구도 연봉이 깎이지 않았다. 박태수 사무국장은 “지난 시즌 성적은 토종선수의 잘못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외국인선수가 부상을 당한 가운데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측면도 있었고 힘들었지만 젊은 선수들이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잘해준 것의 배려차원도 있다”고 했다.
어느 구단 관계자는 “연봉협상의 바탕은 소통이다. 선수와 구단, 지도자의 평가기준을 선수들이 이해해야 하고 모두가 공정하다고 판단하고 받아들이면 만족스러운 연봉협상이 된다”고 했다. 과연 한국전력 선수들은 구단의 새로운 연봉정책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21일부터 나흘간 부산 기장 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지는 현대캐피탈~삼성화재~OK저축은행~한국전력(지난 시즌 성적순)의 2019 부산 썸머매치를 지켜보면 어느 정도 짐작은 가능할 것 같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