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5년차였던 ‘푸른 피의 에이스’는 세 번째 KS에서 좌절을 맛봤다. 그러나 배영수의 커리어에 KS는 그해가 끝이 아니었다. 삼성의 2005~2006년 2연패 때도, 2011~2014년 4연패 때도 배영수는 언제나 삼성의 가을 마운드를 지켰다. 3년차였던 2002년 우승을 포함해 무려 일곱 개의, 한 손에 끼우지 못할 만큼의 반지를 챙겼다. 삼성 왕조의 역사가 곧 배영수의 역사였다.
#삼성 왕조가 무너지자 배영수의 선수 생활도 흔들렸다. 2014시즌 후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한화 이글스로 떠났다. 부상이 겹치며 구속도, 몸도 예전 같지 않았다. 단 한 번도 10승 고지에 올라서지 못했다. 결국 지난 시즌 종료 후 한화와 결별,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었다. 연봉 1억 원. 돈보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기회가 필요했다. 역할은 선발보다 불펜, 필승조보다 추격조에 가까웠지만 삼성을 떠난 뒤 가장 많은 경기(37경기)에서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4.57)을 기록했다. 이보다 중요한 것. 배영수가 웃는 모습을 최근 들어 가장 자주 볼 수 있던 게 바로 올해였다.
#배영수의 열두 번째 가을이자 열한 번째 KS를 앞두고 김태형 두산 감독은 사우나에서 만난 그에게 은퇴를 제안했다. 자연히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이를 악물었다. 좀처럼 등판 기회가 찾아오지 않은 채 KS 4차전까지 접어들었다. 9-9 동점이 된 9회, 유일한 미출장 투수였던 배영수는 불펜으로 이동해 몸을 풀었다. 당초 김 감독은 이용찬에게 연장 10회를 맡기려 했으나 마운드 방문 횟수 착각 해프닝 덕에 기회가 왔다. 연장 10회 1사, 박병호와 제리 샌즈라는 강타자를 상대하러 마운드에 오르는 배영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감이었다.
#선두 박병호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샌즈에게 던진 초구는 다시 배영수에게 돌아왔다. 투수 땅볼. 1루수 오재일에게 공을 던진 배영수는 포효한 뒤 포수 박세혁과 얼싸안았다. 여덟 번째 반지. 그리고 생애 첫 ‘헹가래 투수’의 영광을 누렸다. KS 역대 최고령 세이브(38세5개월3일) 기록도 따라왔다. 배영수에게 이보다 기쁜 건,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가을의 끝무대에서 그토록 바라던 ‘존재 증명’에 성공했다는 사실이었다.
#KS에서 15년 간격으로 경험한 두 번의 연장 10회 마운드. 150㎞를 훌쩍 넘기던 속구는 이제 140㎞를 간신히 기록할 만큼 느려졌다. 몸도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배영수의 존재감은 스피드건에 측정되지 않는다. KS 연장 10회의 첫 기억은 아쉬움이었지만 두 번째는 배영수 인생 가장 행복한 하루로 남게 됐다.
고척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