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벤투 감독님, 골맥경화 어쩌실 겁니까?”

입력 2019-11-2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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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국축구가 강팀을 만나 재미를 본 건 지난해 6월이다. 러시아월드컵 F조 예선리그 2패를 기록하며 토너먼트 진출이 가물가물해진 상황에서 만난 3차전 상대는 하필이면 디펜딩 챔피언 독일이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2-0 승리로 기적을 만들었다. 한국축구가 그 후 지금까지 순풍에 돛 단 듯 호황을 누리는 것도 그 한판의 효과가 컸다.

19일 브라질과 평가전(UAE 아부다비)을 앞두고도 내심 또 한번의 기적을 바랐다. 비록 친선경기지만 세계 랭킹 3위에다가 월드컵 최다 우승국(5회)인 삼바축구를 무너뜨린다면 독일 승리 이상의 효과를 노려볼 수도 있었다. 최근 어수선한 대표팀 분위기도 단박에 정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브라질은 브라질이었다. 우리가 넘기엔 벅찼다. 확연한 실력차를 드러내며 0-3으로 졌다. 벤투 감독 부임 이후 한 경기 최다 실점이다. 물론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최근의 부진을 떨치려는 듯 공격수 손흥민(토트넘)이나 황의조(보르도), 황희찬(잘츠부르크)은 비장했다. 소속팀에서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준 것처럼 대표팀에서도 한건 해줘야 체면이 선다는 건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욕만 넘쳤을 뿐 상대를 위협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손흥민은 고군분투했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황희찬도 돌파가 날카로워지긴 했지만 위협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스트라이커 황의조는 철저히 고립됐다. 특히 전체적으로 유기적인 움직임이 부족했던 게 가장 아쉬웠다. 각자 따로 노는 듯한 모습과 함께 툭툭 끊기는 플레이가 눈에 거슬렸다.

축구는 골로 말한다. 그 골은 과정이 제대로 될 때 확률이 높다. 혼자 잘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패스와 드리블, 크로스 등 세밀함이 조화를 이룰 때 찬스가 더 많이 생기고, 득점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조직력이 중요하다. 그냥 재수로 들어가는 골은 그리 많지 않다.

브라질이 강팀인 이유도 기회가 왔을 때 그걸 골로 연결시키는 능력 때문이다. 벤투 감독이 “브라질이 전반전 2차례의 득점 찬스를 모두 살렸다”고 한 건 그들의 골 결정력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우리는 3경기 연속 무득점이다. 2022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 북한, 레바논과 연속으로 무득점, 무승부를 기록한 데 이어 브라질전까지 3경기 연속으로 골을 넣지 못했다. 이제 득점이 벤투호의 가장 큰 숙제가 돼 버렸다.

지난해 9월 취임한 벤투 감독은 자신의 철학을 한국축구에 입히며 안정된 전력을 구축해 왔다. 국내서 치른 친선경기를 통해 좋은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올해 우승에 도전한 아시안컵에서 8강에 머물며 실패했다. 많은 찬스를 만들고도 골로 연결시키지 못한 효율성을 지적받았다. 반성이 뒤따랐고, 이후 콜롬비아(2-1 승) 볼리비아(1-0 승) 호주(1-0 승) 이란(1-1 무) 등 쉽지 않은 평가전에서 성과를 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월드컵 예선에서 또 다시 효율성을 지적 받고 있다.

특히 9월 월드컵 예선이 시작된 이후 치러진 5차례 A매치 중 4번이 원정경기인데, 거기서 재미를 못 봤다. 투르크메니스탄을 2-0으로 이기긴 했지만 경기력이 논란이었고, 이후 3경기 연속으로 골 맛조차 보지 못했다. 아울러 아시안컵을 포함해 올해 원정 10차례 경기에서 겨우 10골로 경기당 평균 1골에 머문 점은 원정경기 징크스라고 할만하다.

벤투 감독 스타일인 후방 빌드업 축구가 우리 축구의 색깔로 자리 잡은 건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되어선 곤란하다. 상대에 따라 전술적인 유연성도 요구된다. 필요에 따라서는 파격적이고 변칙적인 기용도 시도해 볼만하다. 안정적인 전술 운용이 우선이겠지만 거기에 융통성이 낄 자리를 마련해야한다. 매번 똑 같은 패턴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브라질전은 좋은 자극제가 됐을 것이다. 세계적인 강팀의 수준을 실감하면서 보완할 점이 생긴 것만으로도 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이 대목에서 감독의 역할이 막중하다. 서 말 구슬을 꿰는 건 감독의 몫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싼 돈 들여 벤투 감독을 영입한 이유이기도 하다. 벤투 감독에게 묻고 싶다. “골맥경화 어쩌실 겁니까?”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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