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일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전 현대건설 소속 고유민의 죽음을 놓고 유족과 구단이 각기 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유족은 “고유민이 악성 댓글이 아니라 현대건설 배구단의 의도적인 따돌림과 갑질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주장한 반면 구단은 “코칭스태프 어느 누구도 따돌림을 한 적이 없고, 선수 본인이 배구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고 반박했다.
고유민의 유족과 변호사 등은 2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유족 측은 “고유민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 건 악성 댓글이 아니라 현대건설 배구단의 의도적인 따돌림과 사기 갑질”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사는 “현대건설이 트레이드를 시켜주겠다며 선수에게 계약해지 합의서에 사인하도록 유도했고, 기습적으로 임의탈퇴 처리했다. 일방적으로 임의탈퇴를 공시한 건 대기업의 갑질”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공식 대응을 미루던 현대건설도 이날 입장을 밝혔다. 현대건설은 “선수가 2019~2020시즌이 진행 중이던 2월 29일 아무런 의사 표명 없이 팀을 이탈했다. 구단이 의사를 확인한 결과, ‘인터넷 악플로 심신이 지쳐 구단을 떠나 있겠다’고 했다. 구단은 상호합의해서 3월 30일자로 계약을 중단했고, 절차에 따라 한국배구연맹(KOVO)과 협의했다. 연맹은 고인에게 직접 연락해 계약의 계속이 어렵다는 것을 확인한 뒤 5월 1일 임의탈퇴를 정식 공시했다”며 일방적인 임의탈퇴 공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현대건설은 또 “임의탈퇴 공시 이후 배구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려고 6월 15일 만나서 향후 진로 이야기를 나눴고, ‘배구에 더 이상 미련이 없음’을 확인했다. 고인이 ‘7월 어느 유튜브 채널에서 은퇴했다’고 설명하며 본인의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고 덧붙였다.
유족 측은 또 구단 코칭스태프로부터 비인간적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감독이 나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나랑 제대로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내용으로, 고인이 가족과 지인, 동료들과 나눈 메시지를 공개했다. 고인의 어머니는 “감독이 일부러 연습도 시키지 않았다. 유민이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구단 측에 몇 번씩이나 살펴달라고 부탁했지만 변화가 없었다. 구단 측도 배구단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선수가 수면제를 복용한다는 건 구단의 관리소홀이다. 고인의 한을 풀기 위해 도와달라”고 했다. 변호사는 “구단이 고인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소모품으로 여겼다. 고인은 현대건설이 자신을 속인 것을 알고 괴로워했다”고 주장했다.
현대건설은 “구단의 자체 조사 결과 훈련이나 시합 중 감독이나 코치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만한 행위를 했다는 것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고인은 2019~2020시즌 27경기 가운데 25경기, 2018~2019시즌 30경기 가운데 24경기에 출전했고 과거 시즌 때보다 더 많은 경기에 나갔다. 경기와 훈련을 제외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며 “경찰에서 정식 조사절차를 밟고 있는 가운데 객관적으로 명확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추측만으로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양쪽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경찰 조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여기서 어떤 특별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서로의 주장만 있고 극단적 선택의 이유는 밝혀지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