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은. 스포츠동아DB
노경은은 지난해 25경기에 등판해 133이닝을 소화하며 5승10패, 평균자책점(ERA) 4.87을 기록했다. 내용은 이보다 좋았다. 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WAR)는 1.69로 팀 내 선발투수들 중 댄 스트레일리, 박세웅에 이어 3위였다. 올해 스프링캠프 때도 몸 상태가 나쁘지 않았으니 개막 로테이션 진입은 당연한 듯 보였다. 스스로도 풀타임 선발을 가정해 “10승, 150이닝”을 목표로 내걸었다.
그러나 시작은 퓨처스(2군) 팀에서 맞이했다. 댄 스트레일리~앤더슨 프랑코의 외국인 원투펀치에 지난해 토종 에이스였던 박세웅까지는 예측 가능한 상수였다. 롯데는 남은 두 자리를 두 영건 이승헌(23), 김진욱(19)에게 썼다. 노경은은 개막 4주차인 20~22일 사직 두산 베어스와 3연전 등판을 일찌감치 통보받은 뒤 2군에서 몸을 만들었다. 그리고 20일 두산전에서 6이닝 3실점을 기록하며 첫 등판을 깔끔히 승리로 장식했다.
경기 후 만난 노경은의 표정은 밝았다. 시작이 2군인 이유를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노경은은 “전혀 불만이 없었고 그 선택을 존중했다. 내가 봐도 (이)승헌이와 (김)진욱이의 구위가 정말 좋았다. 롯데의 미래 아닌가. 대투수가 될 선수들이다. 내가 그 입장이어도 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다. 지금 구위가 좋은 선수가 던지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언뜻 ‘립서비스’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말과 행동이 일치하면서 진정성이 더해졌다. 노경은은 경쟁자로 여길 수 있는 김진욱, 이승헌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진욱은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고도 결정구 없이 볼넷을 연달아 허용하고, 이승헌은 구속이 떨어져 날카로움이 덜해졌다. 모두 노경은이 수년 전 겪었던 시행착오다.
“진욱이에게는 ‘결정구를 초구처럼 던지면 좋다’고 추천했다. 일반적으로 투수가 결정구를 던질 때 몰리는 공이 많다. 세게 던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냥 편하게 던지면 된다. 승헌이에게는 롱토스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해줬다. 구속이 떨어졌을 때 효과적인 방법이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안방마님도 감쌌다. 20일까지 롯데 주전포수 김준태는 도루 저지율이 7.1%(14시도·1저지)에 불과하다. 노경은은 “우리 팀 투수들은 세트포지션 때 동작이 큰 편이다. 이러면 아무리 좋은 포수가 앉아도 저지가 힘들다. 투수들이 도와야 한다”며 “(김)준태랑은 서로 돕는 입장이다. 준태의 사인을 믿고 던진다. 이제 호흡도 잘 맞는다”고 말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베테랑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젊은 선수가 뎁스를 채우고 있는 롯데에서 노경은의 가치가 반짝반짝 빛나는 이유는 이처럼 여러 가지다.
사직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