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 기자의 여기는 도쿄] ‘한국도마’에 스며들어있는 여홍철의 흔적들

입력 2021-08-03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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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조는 2020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과 동메달 1개씩을 수확했다. 당초 금메달 7개·종합 10위라는 한국 선수단 전체의 목표를 설정할 때 체조는 메달 후보군으로 분류되지도 않았기에 더욱 값진 성과다.

2개의 메달 모두 개인종목 결선 도마에서 나왔다. 1일 여서정(19·수원시청)이 여자 도마에서 동메달을 따낸 데 이어 2일 신재환(23·제천시청)은 남자 도마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들 모두 이번 대회를 2024파리올림픽 입상을 향한 도약의 과정으로 여겼지만, 기대이상의 성과로 한국 선수단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2명의 연결고리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바로 ‘도마의 신’으로 불린 1996애틀랜타올림픽 이 종목 은메달리스트 여홍철 경희대 교수(50)다. 그의 존재를 빼놓고 여서정과 신재환의 메달을 논하는 것은 어려울 정도다.

잘 알려진 대로 여서정은 여 교수의 둘째 딸이다. 한국 최초의 ‘부녀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아버지가 운동하던 체조훈련장에서 기구를 만지며 놀던 소녀가 메달리스트로 성장한 스토리는 큰 울림을 줬다.

여서정의 고유기술인 ‘여서정(난도 6.2점)’에도 여 교수의 혼이 녹아있다. 여 교수가 애틀랜타올림픽 당시 뛰었던 ‘여2’에서 비틀기 동작 반 바퀴를 줄인 기술이 바로 ‘여서정’이다. ‘여2’는 양손으로 도마를 짚고 2바퀴 반(900도)을 도는 기술인데, ‘여서정’은 2바퀴(720도)를 돈다는 차이만 있다. 이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한 여서정은 결선 1차시기에서 8명의 선수들 중 최고점(15.333점)을 받았다.

2012년 런던대회의 양학선(29·수원시청) 이후 9년 만에 이 종목 금메달리스트로 등극한 신재환에게 최고의 날을 선물한 기술도 ‘여2’였다. KBS 해설위원으로 남자 도마 결선 경기를 중계한 여 교수도 소개글을 ‘여서정 아빠’에서 ‘신재환 선배’로 바꿨을 정도로 임팩트가 강렬했다. 신재환은 1차시기에서 난도 6.0점의 요네쿠라 기술을 펼치면서 착지에 아쉬움을 남겼지만(14.733점), 2차시기에서 ‘여2’를 구사하며 안정적 착지로 14.833점을 받아 금메달을 거머쥘 수 있었다.



신재환이 ‘여2’를 연기한 뒤 여 교수는 “괜찮았다”고 평가했다. “이 기술을 만든 분이 괜찮다고 했으니 괜찮은 것”이라던 캐스터의 발언이 이어졌다. 신재환은 “(여2의 완성도는) 90%였다. 높이 때문에 10%가 부족하다”며 “높이까지 신경 쓰다가 실수한 적이 있어서 살짝 긴장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선수들의 신체구조에 여 교수의 기술이 가미되니 그만큼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확률도 커졌다. 한국선수들은 신체구조상 팔과 다리가 서구에 비해 짧고, 몸의 탄성도 부족하지만 하체의 힘이 강해 구르기와 도약에 능하다. 여기에 특징이 뚜렷한 고유기술 하나를 제대로 선보이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2가지를 결합한 결과가 이번 올림픽에서 값진 결실로 이어졌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다. 여 교수가 현역에서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가 한국도마의 도약을 위한 기술을 남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도마에는 그의 흔적이 스며들어있다.

도쿄 |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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