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진 감독을 울컥하게 한 러셀의 배탈 [스토리 발리볼]

입력 2022-01-06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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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 러셀. 스포츠동아DB

5일 삼성화재는 그야말로 저승 문턱까지 다녀왔다. ‘도드람 2021~2022 V리그’ 남자부 4라운드 KB손해보험과 홈경기 5세트 13-14에서 상대 외국인선수 케이타에게 결정타를 맞았지만, 고희진 감독(42)이 비디오판독을 요청해 그 실점을 지워냈다. 케이타의 발이 센터라인을 넘어간 것을 잡아낸 덕분에 기사회생한 삼성화재는 5세트를 16-14로 따내고 대역전승을 완성했다.


지난달 12일 한국전력전 이후 5연패를 당하며 최하위로 추락했던 삼성화재가 4세트부터 대역전극을 일군 과정이 워낙 극적이다 보니 고 감독은 경기 후 울컥했다. 촉촉해진 눈이 TV 중계방송 화면에도 잡혔다. 그의 평소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이례적이다.


삼성화재는 1~2라운드 예상 밖으로 상위권에서 경쟁했지만, 3라운드부터 전력의 차이를 드러냈다. 선수들의 이런저런 부상까지 겹치면서 조금씩 가라앉았다. 열심히 준비하고 애를 써도 채워지지 않는 한계에 힘들어하던 고 감독은 이날 승리에 대해 “애쓴다고 하늘에서 준 새해 선물 같다”고 말했다.

삼성화재 고희진 감독(왼쪽)과 러셀. 스포츠동아DB


외국인선수 러셀(29)의 배탈은 대역전승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최근 슬럼프를 겪던 러셀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삼성화재의 모든 구성원은 러셀에게 “지금까지 잘하고 있어. 괜찮아”라고 격려했지만, 소극적 성격의 러셀은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했다. 고 감독은 평소 내향적 성격이지만 코트에만 들어서면 전혀 달라졌던 자신의 선수시절을 언급하며 “코트에서만이라도 다른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고 조언했지만, 러셀의 변신은 쉽지 않았다.


미국 UC어바인에서 배구선수로 활약할 당시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했던 러셀의 아내 이유하 씨는 정반대였다. 이 씨는 대학 졸업 당시 소속팀 감독으로부터 “UFC 선수로 뛰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정도였다. 반면 러셀은 엄청난 체격에 비해 성격은 소극적이었다. 이 씨는 “우리 부부의 성격이 뒤바뀌었어야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러셀은 최근 팀의 연패에 더욱 주위의 눈치를 살피고 예민해졌다. 결국 5일 KB손해보험전을 앞두고는 긴장이 지나쳐 배탈이 나고 말았다. 경기 전부터 좋지 않던 과민성 대장은 3세트 도중 또 한번 그를 화장실로 직행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끝까지 뛰면서 팀에 귀중한 승점과 승리를 선물했다.


이런 속사정이 있었기에 고 감독은 더욱 울컥했다. 몸에 탈이 났다고 뛰지 않아도 욕할 사람은 없었지만,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뛰어준 착한 외국인선수였기에 더욱 고마웠다.

우리카드 알렉스. 스포츠동아DB


V리그에서 가장 유명한 배탈은 지난 시즌 남자부 챔피언 결정전에서 나왔다. 우리카드 외국인선수 알렉스(31)가 주인공이다. 3차전까지 기막힌 활약을 펼치며 팀을 우승 문턱까지 이끌었지만, 4차전을 앞두고 갑자기 배탈이 났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변수 때문에 다 죽어가던 대한항공이 우승했다.


알렉스는 KB손해보험 시절이던 2017~2018시즌 6라운드 삼성화재와 원정경기 때도 배탈이 나서 제대로 뛰지 못한 적이 있었다. 알렉스의 체력보충을 위해 권순찬 당시 KB손해보험 감독이 경기 전날 비싼 자연산 회를 사줬는데, 하필 그것이 배탈로 이어졌다. 알렉스의 배탈 때문에 삼성화재에 패한 KB손해보험은 4위에 오르고도 ‘봄 배구’에 나서지 못했다. 이처럼 예민한 선수들에게 배탈은 무시하지 못할 변수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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