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베켄바우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1945년 뮌헨에서 태어난 베켄바우어는 19살 때인 1964년 바이에른 뮌헨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첫 시즌부터 두각을 나타낸 그는 당시 독일 분데스리가 2부리그였던 바이에른 뮌헨을 승격시켰다.
베켄바우어는 바이에른 뮌헨을 유럽 최고 클럽으로 만든 주역이었다. 1964년부터 1977년까지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는 동안 분데스리가 우승 4회, DFB 포칼 우승 4회, 유로피언컵 3연패를 이끈 그는 바이에른 뮌헨을 대표하는 전설로 우뚝 섰다.
국가대표팀에서도 한 시대를 풍미했다. 베켄바우어는 1974서독월드컵 결승에서 요한 크루이프가 속한 네덜란드를 꺾고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당대 최고 선수였던 크루이프와 베켄바우어는 오랜 기간 세계 축구계를 대표하는 라이벌로 회자됐다.
개인수상도 화려하다. 베켄바우어는 독일 올해의 선수에 4차례(1966년, 1968년, 1974년, 1976년) 선정됐다. 유럽 최고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를 2번(1972년, 1976년) 수상했다. 특히 수비수 최초의 발롱도르 수상자가 돼 축구 역사에 입지전적 인물로 기록됐다.
베켄바우어의 선수 시절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베켄바우어는 수비수임에도 탁월한 드리블, 패스, 슈팅 능력을 뽐냈다. 실력과 리더십까지 겸비했던 그는 독일어로 황제를 의미하는 ‘카이저’라는 별칭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였다.
축구화를 벗은 뒤에도 성공가도를 달렸다. 1983년 은퇴 후 1984년 서독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베켄바우어는 1990이탈리아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을 모두 제패하는 기록도 세웠다. 이후 바이에른 뮌헨 회장도 역임했다.
베켄바우어의 죽음에 축구계에서도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지아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베켄바우어는 독일과 세계 축구의 전설이다. 그는 위대한 사람이자 축구의 친구였다”고 말했다. 알렉산데르 체페린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은 “베켄바우어는 수비와 미드필드를 오가며 축구 경기 방식을 바꾼 선구자였다. 진정한 전설에게 작별을 고한다”고 애도를 표했다.
백현기 스포츠동아 기자 hkbaek@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