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클린스만’ 인선작업이 4개월 넘게 표류하면서 대한축구협회(KFA)는 초비상 사태다. 계속 시간에 쫓기는 와중에 축구국가대표팀 사령탑 선임작업을 이끌던 정해성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이 후보군 선정 문제로 KFA 수뇌부와 마찰을 빚다 지난달 28일 사퇴 의사를 전한 데 이어 대부분의 위원들도 물러나기로 했다.
전담기구가 사실상 와해된 가운데 KFA는 선임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정 위원장을 대신해 이임생 기술발전위원장 겸 기술총괄이사가 2일 유럽으로 출국해 몇몇 후보들과 접촉한다. 인터뷰 대상은 다비트 바그너 전 노리치시티 감독(독일), 거스 포옛 전 그리스대표팀 감독(우루과이) 등으로 파악됐다. KFA 측은 “이 위원장 일행이 후보 대면 면접을 한 뒤 5일쯤 돌아온다”고 전했다.
둘 다 ‘정해성 체제’ 전력강화위원회가 최종 후보군에 올린 지도자들인데, 결정 과정에서도 적잖은 촌극이 빚어졌다. 면접자 선정에 앞서 헤수스 카사스 이라크대표팀 감독(스페인), 그레이엄 아놀드 호주대표팀 감독(호주)이 또 다른 유력 후보들로 등장했다. 이들은 한국 대신 캐나다행을 택한 제시 마치 감독(미국)을 최우선 순위로 정했던 1차 인선작업 때도 후보 리스트에 들었던 인물들이다.
카사스 감독은 1차 인선작업 당시 차순위 접촉 후보였고, 마치 감독 선임이 불발된 뒤 실제로 협상 테이블이 열렸지만 계약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라크축구협회의 강력한 반발이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KFA는 카사스 감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감독 본인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현재 상황은 더 어렵다. 한국과 이라크는 9월 시작할 2026북중미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같은 B조에 편성됐다. 이라크가 카사스 감독을 내줄 리가 만무하다.
아놀드 감독이 거론된 것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라크와 달리 호주는 최종예선에서 한국과 다른 C조에 속해있지만, 한국의 오랜 라이벌이다. 또 아놀드 감독이 월드컵 예선과 본선 경험이 많은 노련한 지도자이긴 해도 족적이 딱히 두드러지진 않았다.
게다가 아놀드 감독을 추천한 이가 거스 히딩크 전 감독(네덜란드) 측이라는 얘기도 있다. 사실이라면 충격이다. 2018러시아월드컵 준비과정에서도 히딩크 감독의 이름이 난데 없이 등장해 한국축구를 발칵 뒤집어놓은 바 있다. 당시 대표팀을 이끈 신태용 감독은 난감한 처지가 됐고,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 이유는 하나, 히딩크 감독 선임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 한 축구인은 “정해성 위원장이 KFA와 마찰을 빚은 결정적 이유도 아놀드 감독의 외부 추천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한국축구의 현주소가 기막히기만 하다. 이미 축구외교무대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한국이다. 정몽규 회장 취임 이후 두드러진다. 굳이 아시아권에 적을 만들 필요가 없는데도 ‘감독 빼오기 시도’로 화를 자초하고 있다. 한국축구가 처한 냉정한 현실 하나도 새삼 확인된다. 유명 지도자 영입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아시아권 지도자를 살펴야 할 정도로 재정이 궁핍해진 KFA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