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미국 전국지 USA투데이는 이날 고등학생 시절 ‘야구선수’ 브래디에 관심을 가졌던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역대급 포수’가 됐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프로야구(MLB) 몬트리올 엑스포스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단장을 역임한 케빈 말론은 블리처 리포트와 인터뷰에서 브래디에 대해 “역대 최고의 포수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다”고 확신했다.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면 “그의 첫 사랑은 풋볼이었다”라고 말론은 말했다.
그럼에도 말론은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 몬트리올 구단에 몸담고 있던 말론은 1995년 MLB 드래프트에서 캘리포니아 주 샌마테오 카운티의 주니페로 세라 고등학교를 졸업한 우투좌타 포수를 전체 507번으로 지명했다.
하지만 브래디는 미식축구를 계속하기 위해 미시간 대학에 진학했다.
그때 ‘만약’ 브래디가 몬트리올과 계약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는 풋볼처럼 야구도 지배할 수 있었을까.
슈퍼볼에서 우승한 뉴 잉글랜드 패트리어츠 쿼터백 톰 브래디가 2015년 4월13일 펜웨이파크에서 열린 보스턴 레드삭스-워싱턴 내셔널스 전에 앞서 시구를 하고 있다.
브래디는 고교 재학 때 풋볼, 야구, 농구 3종목을 했다.
1995년 발행된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Examiner)’ 기사에 따르면 브래디는 고등학교 3학년 때 1루수에서 포수로 ‘어려운 전환’을 했음에도 왼쪽 타석에서 능력을 발휘해 5번 타순을 맡았다.
당시 피트 젠슨 감독은 해당 매체와 인터뷰에서 “그는 시즌 초반에 정말 고군분투했다. (수비 위치 변경에 따른 어려움으로) 안타를 못 만들어냈다. 한동안 타율이 .200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정말 제 자리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MLB에 따르면 브래디는 2년간 학교 야구 대표로 뛰며 8개의 홈런과 함께 타율 0.311을 기록했다. 주목받기에 충분한 성적이다.
브래디는 실제 빅리그 구단의 지명을 받았다. 앞서 소개했듯 지금은 사라진 몬트리올 구단이 1995년 드래프트에서 브래디를 18라운드에 지명했다.
몬트리올 스카우트 출신 존 휴즈는 브래디를 야구장으로 유인하기 위해 2라운드 하위권에서 3라운드 상위권 수준의 금액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꽤 유망주로 봤다는 것.
휴즈는 2017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와 인터뷰에서 “우리가 그에게 그 정도 금액을 주려했다는 것은 미래의 빅리거가 될 걸로 생각했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휴즈는 브래디가 MLB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운동 능력이 대단히 뛰어난 젊은이였다. 큰 키와 큰 덩치에 메이저리그에 적합한 얼굴을 가졌다. 맞다, 우린 얼굴을 봤다”라고 말론은 블리처 리포트와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운동 능력이 뛰어나고 튼튼한 몸을 가졌는데, 발전의 여지가 있었다. 스카우트로서 가장 먼저 보는 것 중 하나는 신체 유형, 운동 능력 등 신체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떤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도 본다”고 설명했다.
휴즈는 브래디가 프로 야구선수가 되기 위한 ‘모든 무형적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송구 능력이 있었고, 왼손 파워히터였다. 이 친구가 빅리그 포수가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브래디는 야구 대신 풋볼을 선택했다. 명예의 전당 입성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그는 자신의 결정에 만족하는 것 같다.
브래디는 2016년 페이스북에 추억의 야구카드(몬트리올에 지명됐을 때 발행)를 공유했다. 사진과 함께 올린 글에서 그는 “1995년 MLB 드래프트에서 엑스포스에 지명된 것은 운이 좋았다”면서 “하지만…풋볼을 계속하게 돼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풋볼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동아닷컴 박해식 기자 pistols@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