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차림만봐도골프실력이보인다보여

입력 2008-06-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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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골프를 전공하길 권유했던 사람은 이모였다. 국가대표 출신 골프선수였던 이모는 프로로 전향하지 않고 골프장에서 근무하였기에 유리한 환경에서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채를 잡고 똑딱이 볼을 지나 스윙이 제법 폼을 갖추고 나면서부터 라운드를 시작했다. 그 어설프기 짝이 없던 비기너 시절, 이모의 잔소리의 타깃은 불안한 스윙도, 넘치는 스코어도 아니었다. 바로 옷차림! 이모는 필드에서 선보이는 나의 힙합 패션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원래 치수보다 2사이즈는 큰 바지, 조금 과장을 보태어 무릎까지 내려올 기세였던 원피스 같은 티셔츠(상의는 반드시 밖으로 빼내어 입어야만 했다). 지금은 추억 속에 아련한, 그 시절 최고였던 아이돌 그룹 H.O.T를 비롯한 10대 연예인들은 힙합을 사랑했고 ‘고딩’들은 그들의 패션을 추종했다. 고등학생다운 삐딱함에 골프에 대한 무지함까지 더해졌던 내게 이모의 충고가 들릴 리 만무했다. “옷에 파묻혀서 스윙도 안 보이고 어디 불편해서 골프 치겠어? 너 옷 입는 게 핸디다. 넌 옷 입은 것도 비기너야.” 옷차림이 핸디캡이라는 말. 이모는 골프장에 온 손님들의 옷차림만 봐도 대충은‘저 사람 공을 얼마나 치겠구나’하고 짐작이 가능했다. 당시는 코웃음 쳤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조금씩 스윙을 알아갈수록 휘감기는 티셔츠 탓에 임팩트 때 자꾸 옷이 걸렸다. 피니시도 불편한 것 같았고 너풀너풀한 바지 탓에 필드를 걷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 때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 티셔츠를 슬며시 바지 속으로 집어넣어 입게 되고 골프장에서 만큼은 몸에 맞는 사이즈를 입게 됐다. 10년 구력의 골퍼가 되고 나자 이모의 명언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필드에 가면 ‘의상만 봐도 핸디캡을 안다’의 이론을 반영하는 장면들이 속속 눈에 띈다. 각기 다른 골프실력을 가진 골퍼들이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어제 라운드에서도 옷차림으로 먼저 구력과 실력을 말하는 안타까운 골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스윙하기에 편안한 길이이면서 밖으로 빼내어 입는 디자인은 절대 아닌, 헐렁하고 축 늘어진 박스티를 휘날리던 한 남자가 티그라운드에 올라섰다. 확인해 본 바는 아니지만 그의 바지는 허리가 고무줄로 된 트레이닝 팬츠 같아 보였다. 엉거주춤하고 어설펐던 준비 동작에 빠르기만한 스윙을 선보이더니만 그의 티샷은 영락없이 하늘로 붕 떠서 레이디 티로 떨어져 버렸다. 비단 헐렁하고 성의 없어 보이는 옷차림뿐만 아니라 요즈음에는 지나친 패션 센스를 자랑하는 골퍼들도 가끔 눈에 띈다. 패션지를 너무 본 탓일까? 가끔 잡지를 보다 보면 과연 그 옷을 입고 골프가 가능할 지 의문이 가는 옷들을 조합하여 비쩍 마른 모델에게 입히고는 골프채만 쥐어 준 사진들을 보게 된다. 타이틀은 ‘필드에서 멋쟁이 되는 법’이라고 돼 있다. 그 사진을 보면 가슴을 치며 소리치고 싶다. “그건 무늬만 골프웨어라고!!!”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무기를 잘 갖추어야 한다. 좋은 스코어 혹은 세련된 싱글 골퍼의 이미지를 원한다면 제일 먼저 몸을 편하게 해주는 조건을 갖춘 골프웨어를 선택한다. 거두절미하고 스윙이 편해야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필드에서 보낼 4∼5시간 동안은 조금의 불편함도 없어야 한다. 기능성과 실용성을 기본으로 하고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골프웨어를 선택할 수 있는데 굳이 지나치게 기본을 무시한 정체불명의 옷차림으로 어설퍼 보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진정한 멋쟁이 골퍼이고 싶다면 골프웨어 선택 시 편안함은 기본, 패션은 옵션이다. 스스로 평가해보자. 자신의 골프의상 핸디캡은 몇 점인지. 정 아 름 섹스앤더시티의 캐리처럼 당당하게 살며 필드의 커리어우먼을 꿈꾸는 골프 엔터테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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