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현기자가간다]코트는넓고공샐틈은많았다…여자배구리베로

입력 2008-06-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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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괜히 설렌다. 숙취 때문에 머리가 조금 멍하긴 하지만….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이 느낌은 대체 왜일까. 그랬다. 오늘(5월29일)은 배구 코트를 누비는 예쁜 그녀들과 아주 특별한(?) 데이트가 약속된 날이었다. 프로축구 K리그 대전 시티즌 서포터스 체험에 이은 두 번째. 2007-2008시즌 프로배구 여자부 V리그를 평정한 GS 칼텍스 선수들과 함께 일일 동참훈련을 했다. 경기도 덕평에 있는 LG 인화원 실내체육관에서 이성희 감독, 늘씬한 미녀들과 했던 두 시간 가량의 ‘구슬땀’ 데이트. 어땠냐고? 한 가지 ‘팁(Tip)'을 던지자면 운동과 담을 쌓은 범인(凡人)이 해선 안된다는 것. 그냥, 그 뿐이다. ○ <혹시나> 굴욕 시작“제 멋대로 몸매로요?” 솔직히 내 신장으로 스파이크가 무리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래도 리베로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남자 선수들의 볼은 받지 못해도 여자 선수들과 함께라면 해봄직하지 않을까. 물론 꽃밭 한가운데 들어가면 그림(사진)도 살지 않을까란 엉큼한(?) 생각도 작용했지만. 종목이 결정되자 당장 팀을 섭외했다. 다행히 ‘디펜딩 챔프’ GS칼텍스 배구단이 선뜻 허락을 해왔다. 이성희 감독이 “쉽진 않을텐데, 괜찮겠어요”라고 약간 겁을 줬지만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약속 당일, 광화문 편집국에서 약 2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한 그 곳. 이미 선수단은 일찌감치 체육관에 도착해 몸을 풀고 있었다. 대표 차출과 휴가 등으로 선수 상당수가 빠져 있었다. 개별 트레이닝을 받는 부상 선수들까지 포함해 10명 남짓? 준비해간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김태종 코치와 리베로 남지연(25) 선수의 도움을 받아 손가락 테이핑을 한 뒤 코트로 뛰어들었다. “여러분, 제가 왔어요. 공격수는 좀 그렇지만 리베로는 할 수 있답니다.” 그때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리베로 최유리(23) 선수가 피식 웃으며 던진 한마디. “리베로를 무시하세요? 그런 ‘제 멋대로’ 몸매로요?” 아, 그녀에게…. 초장부터 심상찮다. ‘이거 또 불안한데.’ 괜히 머쓱해지자 코트 한쪽에 쪼그려 앉아 김 코치가 건넨 무릎 아대를 착용했다. 내 행동을 가만히 응시하던 남지연 선수의 한마디도 가슴 한구석을 찌른다. “기자님, 아대 거꾸로 착용했는데요. 다시 하시죠.”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없다. ○ <역시나> 굴욕 완결“그 배는 연출 아니죠?” 어렵게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래, 코트에서 보여주리라.’ 이성희 감독의 구령에 맞춰 가볍게 몸을 풀었다. 할 만 했다. 어리석은 생각도 든다. ‘공은 언제 만지는 거야.’ 최경아 주무가 가져다 준 물병 2개는 그 때만해도 뚜껑을 여는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코트 바닥을 짚은 뒤 옆걸음 왕복 달리기, 제자리 뛰기, 토스와 리시브 자세를 배우는 것까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정작 볼 훈련이 시작되자 강도가 높아진다. 호흡도 점차 가빠졌고. 김 코치가 코트 구석구석으로 찔러주는 볼을 받아내는 훈련. 축구 골키퍼가 된 기분으로 온 몸에 힘을 실어 받았다. 그런데 웬걸. 몇 세트 반복하다보니 갑자기 머리가 핑글핑글 돈다. ‘아, 메스꺼워.’ 무거워진 몸을 주체할 수 없어 한 번은 코트에 이마를 찧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아프지 않은 척 했지만 충격이 컸다. 머리 부상을 입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골키퍼 체흐가 잠시 떠올랐다. 결국 큰 대자(大)로 뻗어버렸다. 심장과 폐는 두근두근 폭발할 지경이었고, 땀은 비오듯 쏟아졌다. ‘왜 진작 운동을 하지 않았는가’란 후회로 가득했다. 사진기자가 “좀 더 힘든 표정을 지어봐”라며 리얼한 모습을 요구했지만 안들린다. 당장 죽을 것 같은데 연출은 무슨…. 코트로 벌러덩 누운 바람에 훈련도 잠시 중단됐건만 창피함은 잊었다. 타는 입술에 침을 발라가며 “그냥 찍어요. 연출못해요”라고 대꾸한 뒤 그대로 누워있자 남지연, 이정옥(25) 선수가 지나가며 쐐기를 박는다. “기자님, 그 배도 연출하신 건 아니죠?” 헉, 이럴 수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서 있던 이 감독이 수건과 물을 가져다준다. “힘드시죠?” 대꾸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바로 옆에서 어여쁜 선수들이 더 많은 훈련을 소화했는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들이다. 아가씨가 아닌 ‘철녀’다. 다리마저 풀리자 이 감독과 김 코치는 ‘사람 죽일 필요는 없지’란 표정으로 예정에 없던 서브 및 리시브, 토스 동작을 가르쳐준다. 쉬어가는 타임. “서브는 쳐내는 게 아니라 부드럽게 뿌린다는 생각으로 해보세요.” “리시브와 토스를 할 때는 공을 두려워하지 말고 끝까지 보세요.” 다행히 수확은 있다. 마음과는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는 바람에 나머지 한 시간 동안 체력 훈련 대신 이 감독만의 기초 동작 지도를 배우다보니 기본기엔 꽤 익숙해졌다. 물론 선천적으로 부족한 운동 신경에 볼은 제 멋대로 튀었지만. 다시 생겨난 자신감에 코트로 뛰어든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던 김 코치 왈, “딱 5세트만 더 해봅시다.” 선수들의 환호를 받으며 슬라이딩을 몇 번 더하다 결국 넉다운이 됐다. 이날 훈련은 몸풀기 삼아 쉽게 진행한 것이라나. 문득 체육관 벽에 걸린 선명한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 흘린 땀이 내일의 영광을 약속한다.’ 그녀들의 아름다운 우승 뒤에는 분명,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덕평=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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