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 선수. 스포츠동아DB
나쁜 컨디션 불구 김세영 추격 따돌려
세계랭킹 1∼2위 자존심대결 더 강해
승부와 경쟁 피하지 않고 오히려 즐겨
행운이다. 지난해 3월과 올 3월 그리고 15일 끝난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까지 세 번이나 박인비의 우승을 현장에서 목격했다. 우승의 순간을 지켜보면서 박인비가 여왕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됐다.
● 강한 상대일수록 더 강해지는 골프여왕
2014년 3월7일(유럽여자골프투어 월드레이디스 챔피언십·중국 하이난). 박인비는 47주째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를 달렸고,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은 호시탐탐 박인비 자리를 넘봤다. 박인비와 페테르센은 공동선두로 최종라운드를 맞았다. 규모가 큰 대회가 아니었기에 누가 우승하더라도 랭킹에는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1∼2위의 자존심이 걸린 대결에 관심이 쏠렸다.
경기는 반대로 흘렀다. 대회 이전까지 박인비는 8개월 동안 우승이 없었다. 2013년 US여자오픈이 마지막 우승이었다. 그러나 쫓는 페테르센은 조급했고, 오히려 쫓기는 박인비는 여유로웠다. 이런 모습은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뚜렷해졌다. 결국 박인비는 24언더파로 우승했다. 페테르센은 19언더파에 그쳤다. 박인비는 경기 뒤 “페테르센의 추격이 신경 쓰이지만 즐거운 경쟁이다”며 피하지 않았다.
● 승부 즐기는 진짜 승부사
3월9일 싱가포르 센토사골프장에서 열린 HSBC 위민스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에서 환상적인 대진표가 만들어졌다.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18)와 2위 박인비 그리고 3위 스테이시 루이스(미국)가 챔피언조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리디아 고는 2월 박인비를 제치고 세계랭킹 1위에 올랐고, 박인비는 빼앗긴 1위 자리를 되찾기 위해 우승이 필요했다. 루이스는 2위 박인비를 추월할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승부는 생각보다 싱거웠다. 1번홀부터 승부의 추는 박인비로 기울었다.
3명은 모두 비슷한 거리의 버디 기회를 만들었다. 가장 먼저 퍼트를 한 루이스의 공이 홀을 지나쳤다. 이때 루이스는 주변에 있던 갤러리를 향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실수를 갤러리 탓으로 돌리려는 듯한 행동이었다. 리디아 고의 퍼트는 홀에 미치지 못했다. 리디아 고의 컨디션을 알 수 있게 하는 퍼트였다. 리디아 고는 이날 많은 버디 기회에서 조금씩 퍼트가 짧았다. 박인비 역시 버디를 놓쳤다. 그러나 퍼트가 홀을 살짝 지나간 뒤 멈췄다. 퍼트 감각이 나쁘지 않음을 보여줬다. 경기 전 박인비는 살짝 부담을 안았다. 그는 “리디아 고, 루이스와 함께 챔피언조에서 경기를 한 건 처음이다. ‘왜 하필 내가 잘 치는 경기에서 이런 힘든 승부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담이 됐다. 그러나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고 오늘 붙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승부를 즐겼다.
● 최악에서 최상을 만든 진정한 골프여왕
LPGA투어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인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은 박인비에게 부담이 큰 대회였다. 메이저대회 3년 연속 우승과 세계랭킹 1위 탈환이라는 목표가 그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대회 개막 이틀 전 오른쪽 갈비뼈 부위에 담이 걸렸다. 근육이 뭉쳐 제대로 스윙을 하기 힘든 상태였다. 박인비는 1년에 1∼2차례 이런 증상이 찾아왔다. 이에 올해부터는 물리치료사가 따라다니며 그녀를 관리하고 있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박인비는 최상을 만들어 냈다. 특히 마지막 4라운드는 압권이었다. 우승을 놓고 경쟁을 펼친 김세영(22·미래에셋)은 얼마 전 박인비에게 충격의 패배를 안겼던 주인공. 4월 하와이에서 열린 롯데챔피언십에서에서 두 번이나 연속된 기적을 만들어 내며 박인비의 우승을 가로막았다.
이날 승부도 예상대로 치열했다. 달아나면 추격해왔고, 한숨을 돌릴만 하면 어느새 턱밑까지 따라왔다. 하지만 박인비는 흔들리지 않았다. 꿋꿋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에서 진정한 골프여왕의 자세를 볼 수 있었다.
해리슨(미 뉴욕주) |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