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인6색 봄배구’ 세터들의 손끝에서 춤춘다

입력 2017-03-17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대한항공 한선수-현대캐피탈 노재욱-한국전력 강민웅-흥국생명 조송화-IBK기업은행 이고은-KGC인삼공사 이재은(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스포츠동아DB

삼성화재 신치용 단장은 “배구(排球)가 아니라 배구(配球)”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공을 어떻게 분배하느냐’가 배구의 에센스라는 철학이다. 결국 배구에서 세터의 중요성으로 귀결된다. 어떻게든 올려만 주면 해결하는 월드클래스 외국인 공격수가 사라진 ‘2016~2017 NH농협 V리그’에서 세터의 비중은 더 올라간다. 탁월한 사이드 공격수와 센터가 드물수록 세터의 직관적 패턴 플레이와 입맛에 맞는 토스 스피드, 높이에 따라 공격성공률이 요동치는 환경이다.

정규시즌의 격전을 치르고, 남자부에서는 대한항공-현대캐피탈-한국전력, 여자부에서는 흥국생명-IBK기업은행-인삼공사가 살아남았다. 플레이오프(PO)부터 챔피언결정전까지, 큰 경기일수록 객관적 전력을 초월한 기세에 따라 갈리는 법이다. 결국 세터들의 평정심 혹은 담력은 통계로 측정할 수 없는 ‘봄 배구’의 열쇠다.



● ‘기장’ 한선수가 이끌 대한항공의 항로는?

한선수(32)는 현역 V리그 최고의 세터로 평가 받는다. 현대캐피탈 노재욱(25)이나 한국전력 강민웅(32)을 압도하는 커리어를 갖췄다. 공격수를 살려서 활용할 줄 아는 자기만의 주관과 기교를 갖췄다. 분위기를 끌고 가는 리더십도 있다. 그러나 배구계에서는 한선수의 ‘자기 확신’이 챔피언결정전에서 특효약이 될지, 독으로 작용할지 단정 짓지 못한다. 단기전에서도 한선수가 스스로의 방식으로 이기려할지, 아니면 우직한 정공법으로 선회할지가 포인트다. 정규시즌 우승 매직넘버를 줄이는 과정에서 ‘큰 경기 울렁증’을 노출한 대한항공인지라 한선수가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절대적이다.

대한항공 한선수. 스포츠동아DB



● 노재욱의 멘탈에 걸린 현대캐피탈의 대망

현대캐피탈 ‘스피드배구’의 퀄리티는 노재욱의 손끝에서 좌우된다. 현대캐피탈의 화려한 라인업은 노재욱이 흔들리는 순간, 위력이 반감된다. 노재욱의 장점은 ‘잘할 때 아주 잘한다’는 것이고, 단점은 ‘못할 때는 엉망에 가깝다’는 것이다. 잘할 수 있는 소질을 갖춘 세터임에도 편차가 있다는 것은 곧 멘탈이 일정하지 못하다는 해석으로 귀결된다. 한국전력과 갖는 PO는 현대캐피탈이 우승 길목으로 가는 최대고비로 꼽힌다. 현대캐피탈이 1승5패로 절대열세에 놓였던 것은 노재욱이 한국전력 블로킹을 지나치게 의식해 위축됐던 것과 연관성이 있다. 5연패 후 오히려 정공법으로 갔던 6번째 대결에서는 이길 수 있었다. 노재욱의 허리도 불안요소이지만 일단은 믿고 갈 수밖에 없다.

현대캐피탈 노재욱. 스포츠동아DB



● 강민웅, 한국전력 대권의 마지막 퍼즐?

3위임에도 한국전력을 언더독(약자)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전력 자체의 짜임새가 워낙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공격, 수비, 높이, 서브 등에서 딱히 약점을 찾기 어렵다. 그럴수록 세터 강민웅의 역량이 부각될 상황이다. 패하면 책임을 뒤집어쓸 확률이 가장 큰 포지션이다. 미디어데이에서 명(名)세터 출신인 한국전력 신영철 감독이 굳이 강민웅을 언급한 ‘격려’에는 일말의 불안도 들어있을 터다. KOVO컵 우승세터이지만 강민웅이 과연 큰 경기 압박감을 견뎌낼지가 한국전력의 여정을 결정할 것이다.

한국전력 강민웅. 스포츠동아DB



● 흥국생명 ‘쌍포’는 조송화가 움직인다!

흥국생명을 정규시즌 1위로 이끈 알파이자 오메가는 이재영~타비 러브의 역대급 좌우 쌍포였다. 그러나 흥국생명은 두 선수 중 최소 1명이 무력화되면 믿기지 않는 졸전으로 침몰하곤 했다. 능력치가 검증된 좌우 쌍포보다 그 외적 변수에 따라 흥국생명의 경기력이 좌우될 때가 많은 셈이다. 그 변수 중 핵심이 바로 세터 조송화(24)의 컨디션이다. 창의적 토스보다는 안정감에서 조송화의 장점이 있는데 몸이 아프면 토대가 흔들린다. 어린 선수가 많은 편인 흥국생명에서 세터의 큰 경기 경험이 적은 것도 걸린다.

흥국생명 조송화. 스포츠동아DB



● IBK기업은행, 김사니와 이고은의 최적 조합은?

IBK기업은행은 여자배구 현역 최고의 세터로 꼽히는 김사니(36)를 보유하고 있다. 김사니의 역량이 문제가 아니라 경기를 온전히 뛸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무릎, 허리 등 온갖 통증으로 김사니는 정규시즌 절반을 날리다시피 했다. 이 와중에 IBK기업은행이 강자의 면모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고은(22)의 등장 덕분이다. 5라운드 MVP에 뽑힐 만큼 인상적이었다. 이정철 감독은 미디어데이에서 5:5 비율로 두 세터를 섞을 것을 시사했다. 큰 경기 ‘타짜’인 김사니와 상승세의 이고은을 상황에 따라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리쉘~박정아~김희진~김미연 등, 공격수들이 출중한 IBK기업은행 봄배구의 백미가 될 듯하다.

IBK기업은행 이고은. 스포츠동아DB



● 인삼공사 서남원 ‘트랜스포머 배구’의 결정판은?

인삼공사 선수들의 포지션을 사실상 파괴한 뒤, 성공적으로 재구축한 서남원 감독은 18일부터 시작하는 IBK기업은행과의 여자부 PO 1차전 라인업에도 ‘여지’를 남겼다. 한수지(28)의 레프트 기용이 그것이다. 원래 세터였던 한수지는 서 감독을 만난 뒤 센터로의 성공적 전향을 해냈다. 그러나 변화는 그치지 않았고, 라이트~레프트 포지션까지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객관적 전력에서 열세인 인삼공사이기에 서 감독을 만나 꺼져가던 배구인생의 불꽃을 다시 살린 세터 이재은(30)의 활약이 필수적이다. 절대적 공격점유율을 책임지는 알레나를 어떻게 살려가며, 공격루트를 다변화할지가 인삼공사의 좁지만 가야할 활로다.

KGC인삼공사 이재은. 스포츠동아DB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