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피플]‘불운의에이스’문동환의도전

입력 2009-08-13 07:30:00
프린트

아마추어 시절 그의 가슴엔 언제나 태극마크가 선명했다. 약체 동래고 시절부터 초고교급 투수로 전국에 이름을 날렸고, 연세대 시절엔 국가대표 에이스를 지냈다. 프로에서도 99년(롯데) 17승으로 다승 3위, 2006년(한화) 16승으로 다승 2위에 오르며 화려한 시간을 보냈다. ㄷ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의 야구 인생은 풍파와 격랑의 연속이었다. 팔꿈치 수술만 3차례. 지루한 재활훈련으로 자신과의 사투를 벌이는 날이 더 많았다. 2007년 가을잔치에서 부상투혼을 발휘하다 기약 없는 재활훈련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다시 1군 마운드에 복귀하지 못했다.

‘불운의 에이스’ 문동환(37). 한화는 1년 반을 기다린 끝에 결국 지난달 8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웨이버 공시를 요청했다. 사실상의 방출. 그리고는 지금까지 어느 팀도 그를 부르지 않고 있다. 이대로 사라지는 것일까. 그러나 그 스스로는 은퇴식을 거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일어서겠다”며 조용히 대전에서 재활훈련을 하고 있었다.

○테스트 받고서라도 뛰고 싶다

대전시 서구 둔산동에 위치한 재활전문 병원인 ‘재미있는 병원’. 그는 이곳에서 몸을 만들고 있었다. 튜빙과 웨이트트레이닝 기구를 잡고 씨름하며 땀을 뻘뻘 흘렸다. 웨이버 공시 후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웬만한 선수라면 포기할 법도 한데 그는 왜 재활훈련을 계속 이어가고 있을까.

“가을에 테스트 받아 보려고요. 이렇게 그만두면 너무 미련이 많이 남을 것 같아요. 내 자신이 인정을 못할 것 같고…. 어느 팀이 됐든 시즌 끝나고 테스트라도 받아주는 팀이 있으면 좋은 거죠.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인데. 구단에서는 나이가 걸림돌이 될지 모르지만 사실 몸 상태가 중요한 거잖아요. 그때를 대비해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무슨 복이 있는지 이곳 원장님이 배려해줘 여기서 공짜로 재활훈련을 하고 있어요. 사실 운동할 데도 없어서 포기할 생각까지 했는데….”

천하의 문동환이 테스트를 받고서라도 재기하겠다니….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은퇴할 줄 알았는데 그는 다시 도전하겠단다.

“과거 명성이나 자존심 같은 걸 따질 때가 아니잖아요. 연봉도 필요 없고. 그저 야구를 딱 1년 만이라도 더 하게 해주는 구단이 있다면 저로서는 고마운 일이고 은혜를 입는 거죠.”

○방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7월 8일. 한화가 KBO에 그를 웨이버 공시 요청한 날이다. 프로 선수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겪을 수 있는 방출의 칼날. 그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이튿날 김인식 감독에게 인사를 갔다. 방출은 구단의 결단. 김 감독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동환아, 올해까지는 너를 끝까지 안고 갔어야하는데 미안하다”며 제자의 등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는 “감독님에게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전반기가 끝날 때까지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나름대로는 방출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도 시즌 끝나고 통보받을 줄 알았는데…. 처음 방출 통보 받았을 땐 사실 야구를 완전히 접으려고 했어요. 집사람하고 ‘이젠 고향 부산에 내려가야 하나’심각하게 고민도 했고. 그러고 있는데….”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크게 한숨을 쉬었다.

“초등학교 1학년 딸이 있어요. 제가 일주일 동안 집에서 뒹구니까 딸이 물어보더라고요. ‘아빠, 왜 야구장에 안 가?’할 말이 없더라고요. 가슴은 미어지고. 방출 신분이니 어디 훈련하러 갈 데도 없지…. 그래서 ‘아빠가 너무 아파서 야구장 안 가는 거야’라고 둘러댔죠. 딸은 이젠 아빠가 야구선수인줄 아는 나이죠. 근 2년간 아빠가 야구장에서 공을 던지는 모습을 못 보여줬잖아요. 마음이 걸리더라고요. 아빠가 마운드에 선 모습을 꼭 한번이라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집사람하고 ‘해보자, 마지막까지 해보자’고 다짐했죠.”

○부상과 재활, 그리고 다시 부상 ‘불운의 에이스’

롯데에서 98년 12승, 99년 17승을 거두며 아마추어 시절의 명성을 이어가던 그는 팔꿈치 뼛조각 수술과 재활, 인대접합수술과 재활을 거듭하면서 좀처럼 재기하지 못했다. 2004년 한화에 둥지를 튼 뒤 15패(4승) 투수였지만 김인식 감독이 부임한 2005년 10승에 이어 2006년 16승으로 신인 류현진(18승)에 이어 다승 2위를 차지했다.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이끌었다.

그러나 2007년 중반 이번에는 극심한 허리통증이 찾아왔다. 그해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 빠졌던 그는 팀이 삼성과의 사투 끝에 플레이오프에 오르자 출전을 강행했다. 김인식 감독도 만류했지만 그는 동료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다. 허리에서 타고 내려온 통증이 고관절과 다리까지 마비시켰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마운드에 올라 혼을 던지는 모습에 팬들은 감동했다. 그러나 그 후유증이 결국 지금까지 그의 발목을 잡았고, 결국은 방출로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욕심이었죠. 시즌 막판에 어느 정도 아프지 않은 선수 없잖아요. 팀이 거기까지 갔는데 저도 뛰고 싶었어요. 그런데 디스크 통증이 다리까지 내려오더라고요.”

그는 이후 재활군에서 살다시피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무리하게 일정을 앞당겨 공을 던지자 통증은 어깨로 이어졌다.

“TV로 동료들이 뛰는 거 보니까 하루 빨리 마운드에 서고 싶더라고요. 몸은 50%%밖에 회복이 안 됐는데 마치 70-80%% 상태처럼 움직이고 공을 던지니까 몸에 부하가 걸린 거죠. 한화 선발진이 약하다는 말을 듣다보니 빨리 도움을 주고 싶었고, 저도 나이가 들다보니 올해도 못하면 끝나는 게 아닌가 싶어 심적으로 쫓겼어요. 공을 던지다 아프면 스톱해야하는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조금 안 좋아도 ‘괜찮습니다’라고 넘어갔어요. 젊은 선수도 계속 들어오는데 1년, 1년 살아남기 위해 야구를 해야하잖아요. 과욕을 부렸어요.”

2군에서 그의 투구를 지켜본 한화 한용덕 코치는 “구속이 시속 140km 정도는 나왔다. 그러나 한번 던지면 회복이 너무 더뎠다”고 설명했다. 5이닝 동안 70-80개의 공을 던지고 나면 다시 잔류군으로 가서 몸을 만들기를 반복했다.

○몸상태는 80%%, 다시 마운드에 서는 그 날까지

문동환은 재활전문 병원에서 꾸준히 훈련한 결과 현재 몸 상태가 거의 80%% 수준으로 회복했다고 말했다. 이젠 조급함을 버리고 가을 테스트를 받을 때까지 여유를 갖고 몸을 회복시킬 생각이다. 대전고 한희민 투수코치의 허락을 얻어 이달 말쯤에는 대전고에서 서서히 투구도 시작할 계획이다. 그는 어쩌면 ‘실업자’ 신세지만 여전히 넉넉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행복한 야구인생을 살아왔다고 했다.

“저는 복 받은 사람이죠. 롯데에서 수술 후 재활할 때 오랫동안 기다려줬지만 거기서 재기하지 못해 아직도 미안해요. 유승안 감독님이 저를 한화로 데려왔는데 오자마자 15패 했죠. 그래도 끝까지 내보내줘 재기할 수 있었고, 5-6년 더 야구할 수 있었어요. 올해 선발투수 부족으로 김인식 감독님이 너무 힘드신데 보탬을 주지 못하고 이렇게 떠나 죄송해요. 한화도, 대전 팬들도 제가 재기하기를 바라면서 많이 기다려주셨는데 미안하죠.”

그는 이대로 야구를 그만둘 수 없다고 했다. 지금은 힘든 시기지만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될 소중한 시간이라고 여기고 있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쓰러지면 다시 재기했던 ‘오뚝이 투수’ 문동환. 우리나이로 서른여덟, 방출이라는 절망의 끝자락. 그러나 절벽 위에 핀 희망의 장미 한 송이를 바라보며 그의 붉은 심장은 여전히 박동하고 있다. “단 1년 만이라도 마운드에 서면 여한이 없겠다”는 열정을 안고서.

대전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기자스페셜

이전 다음

뉴스스탠드

최신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