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부산’의김영호,아버지께선말씀하셨죠남자라면…“울지마라”

입력 2009-10-07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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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 같은 남자의 밑바닥 인생과 부정을 그린 영화 ‘부산’의 주인공 김영호. 영화의 촬영지였던 부산을 “세상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한 그는 세 딸의 원동력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어릴적세상떠난아버지…지금도삶의원동력아이들싸움소리에도행복“이게가족이구나!”
“울지 마라. 그리고 날 닮지 마라.”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셨다. 아버지는 “가정을 책임져야 하니 공부를 하라”고 다그치셨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하루가 멀다 하고 매를 드는 아버지가 무서웠고 장남으로서 느끼는 존재감은 거대했다. 그런 아버지는 하지만 너무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

13세의 나이에 바라보는 아버지의 부재는 커보였다. 그렇게 추억에만 남은 아버지를 떠올리며 배우 김영호는 요즘 산소를 찾아 사과의 말을 하곤 한다.

“영화 개봉을 앞두거나 촬영을 시작하고 끝낼 때면 늘 산소에 간다. 가서 3시간 동안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다. 요즘엔 남자답지 못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정직하게, 힘든 일에 무릎 꿇고 살지 않게 해달라고 말한다. 아내와 어머니에게 하지 못하는 얘기도 다 한다.”

김영호에게 아버지는 남자였다. “남자라면 강하게 자라야 한다”면서 “울지 마라”고 가르치셨던 아버지는 남자였다. 김영호는 그 남자다움에 대해 말했다.

“솔직하고 정직하며 여자를 지킬 줄 아는 것. 아이들을 잘 보호하고 세상에 부는 바람 앞에서도 떳떳한, 발가벗어도 떳떳한 사람.”

이 남자, 혹시 마초? “그렇지 않다. 단지 세상에 떳떳한 사람이고 싶다”는 김영호는 무서운 존재 같았던 아버지의 순정을 봤다. “어머니에게 약하고 한 평생 어머니만 알았던 분”이었던 아버지에게 정을 느끼고 마음을 봤다. 그런 그가 이제 세 딸의 자상한 아버지가 됐고 한 편의 영화로 아버지의 부정을 진하게 연기했다.

15일 개봉하는 영화 ‘부산’(감독 박지원·제작 오죤필름, 영화제작소 몽)에서 부산의 보도방을 운영하며 ‘독사’ 같은 밑바닥 삶을 사는 남자가 바로 그다.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사는 ‘양아치’ 인생(고창석)의 아들이 자신의 친아들(유승호)임을 아는 순간, 서서히 무너지면서도 세상에 악악대는 남자. 김영호는 “정말 살아보고 싶었던” 인물의 이야기에 만족해했다.

“대체 왜 그렇게 살았는지 느껴보고 싶었다. 배우들은 정말 하고 싶은 대사를 만나면 세상 가장 좋은 선물을 받은 느낌을 갖는다.”

- 어떤 점에서 그런가.

“남들은 하지 못하는 걸 배우는 한다. 거기서 느끼는 카타르시스와 에너지는 복을 받는 것과 같다. 우리는 적당한 규범과 도덕 안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뭔가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가식이 있다. 하지만 이 인물은 가식이 없다. 마초와는 다른, 야수같은 느낌이 있다. 내 안의 그것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가족이라 해도 영역을 침범하면 가만두지 않는다. 숨겨놓은 본성을 가장 많이 드러내는 놈이다.”

- 본성이라.

“20대 때, 없이 사는 게 불행하다고 생각하다 없는 게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는 중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만 바라보는 부모가 있고, 난 욕망이 있는데 뭔가 가지려면 돈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하지만 돈은 힘들 것 같고, 그렇다면 권력자가 되는 것인데 그런 재목은 못된다. 그래서 더 상위의 개념으로 성직자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없는 것도 행복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뒤 별 고민 없이 살아왔다.”

- 영화 ‘부산’은 가족애를 큰 주제로 삼고 있다. 당신에게 가족은 무엇인가.

“바로 그 ‘없다’의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결정체다. 내게 웃어주고, 울고, 짜증을 내는 게 행복임을 알게 해주는 존재. 필리핀에 가 있는 아내와 통화를 하다 수화기 너머로 아이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가만히 듣는다. 순간, 행복이 밀려온다. 그게 가족이다.”

- 그럼 아버지는.

“아버지는…, 삶의 원동력! 아니면 에너지? 우리 아이들에게 원동력이 되고 나의 원동력이 되는 사람. 지금도 코스모스를 보면 아버지 얼굴이 떠오른다. 아홉 살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로부터 추석 선물을 받았다. 장난감 권총이었는데 서울의 온 시장을 뒤져 산 것이다. 선물을 사오신다는 말에 코스모스가 길게 핀 과수원 길에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 아버지의 순정을 봤다고 했다. 당신에게도 순정이 있지 않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문자메시지로 시를 써보낸다고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보낸다. 절친한 친구인 부활의 김태원이나 홍상수 감독, 바비킴 같은 사람들 말이다.”

- 아예 시집을 내보는 건 어떠냐.

“시는 받는 사람만 보라는 의미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만 주고 싶다.”

김영호는 한 후배가 사랑에 고민하고 있다면서 그에게 보낸 시를 보여줬다. “순간순간 충실하게 산다”는 그가 후배에게 전하는 시구 가운데 ‘사랑은 익숙한 삶이 아닌 걸’이란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 여운으로 남았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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