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자의 인증샷] 김남진, “팬이 되어보니 팬을 알겠노라”

입력 2011-06-08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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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출신 연기자 김남진. 스포츠동아DB.

모델 출신 연기자 김남진. 스포츠동아DB.

그러니까 1990년대 중반쯤일 것이다.

모 청바지 광고에 등장한 한 남자 모델. 상당히 강렬한 눈빛과 시크한 분위기를 풍기더니 순식간에 당대 여대생들의 마음을 쏙 빼앗았다. 지금으로 치면 ‘차도남’의 원조쯤 되시겠다.
실제로 여대생들 사이에서는 그의 화보를 모으는 열풍이 일기도 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김남진(35)이다. 1996년 대학 1학년 때(갓 스무 살이었다) 모델로 데뷔했으니 어느덧 연예바닥 경력 15년의 ‘중견’이다.

한동안 팬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혹시 조용히 은퇴를 한 걸까’ 싶은 순간 ‘그럴 리가요’하며 돌아왔다. 2008년 드라마 ‘흔들리지마’가 끝이었으니 햇수로 3년 만이다.

그런데 영화도, 드라마도, 패션쇼도 아닌 연극이다. 게다가 연극은 처음이다.
6월 9일부터 서울 동숭동 컬처스페이스 엔유에서 공연하는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에서 김남진은 오타쿠 삼촌팬 ‘이에모토’ 역을 맡았다.

이래저래 궁금한 게 많았다.
누가 모델 출신 아니랄까봐 분명히 사전에 ‘사진 촬영이 없다’라고 통보했음에도 풀 메이크업에 헤어까지 ‘완전무장’을 하고 나타났다. 옆에는 의상을 가득 챙겨 든 코디네이터가 서 있었다. 이쯤 되면 기자 쪽이 미안하다 못해 부담스러워진다.

김남진은 “괜찮다”며 “내가 할 일을 할 뿐”이라고 했다.


○ “설마 연극이 올 줄이야”

김남진이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음대생 출신이라는 사실을 아시는지. 그가 피아노를 계속했더라면 쇼팽 스페셜리스트이자 미남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중국의 윤디 못지않은 스타 연주자가 됐을 것 같다.

김남진은 “피아노를 지금도 가끔 치기는 하는데 소질이 없는 것 같다”라며 웃었다.
대학에 입학한 뒤 모델학원에 등록했는데, 얼마 다니지 않아 곧바로 디자이너 장광효의 눈에 띄어 모델로 데뷔했다. 대학교 1학년 겨울의 일이다.

“학교에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대단했겠다”라고 하니 “학교를 잘 안 나가서 모르겠다”라며 또 웃었다.

그나저나 공백이 3년이다. 그 동안 김남진은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두 번 정도 사무실을 옮기고, 여행도 좀 다니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늦어졌어요. 연예인이란 게 사실 어떻게 보면 기다리는 직업이잖아요. 그 시간이 좀 길어진 거죠.”

지나고 보니 “3년이 석달 같다”라고 했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그 누구든 공백이 있으면 복귀에 대한 두려움, 초조감이 일기 마련이다. 김남진은 어땠을까.

“2년까지만 해도 심했죠. 감정 기복도 크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나더라고요. 겉으로는 웃지만, 웃는 게 아니야, 흐흐. 그런데 3년이 넘어가니까 다 운명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일이 주어지고. 다시 뭔가 꿈틀거려지는 것 같고. 하긴 3년 전까지만 해도 쉬지 않고 일했던 거 같아요. 좋은 거, 아닌 거 가리지 않고.”

“3년을 쉬니까 복귀작 생각을 많이 하게 되죠. 그런데 설마 연극이 올 줄은 몰랐어요, 우하하! 당연히 영화나 드라마가 하고 싶었고, 연극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죠. 많이 보지도 않은 장르이고. 연극영화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어찌어찌 하다보니 연기를 하게 된 쪽이라 ….”

복귀작을 고민하고 있는데 연극과 뮤지컬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딱히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그러다 ‘키사라기 미키짱’의 대본을 보았다. ‘복귀작으로 연극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하는 문제를 떠나 우선 대본이 재미있었다.

“연극은 다 까발려지는 거잖아요. 두 시간 동안 올 누드를 하고 있는 거죠. 컷이 딱딱 나누어지는 연기만 하다가 한 번에 쭉 가는 연기를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밀려오더라고요.”

고민 끝에 ‘하자!’고 마음 먹었다. 30대 중반인데, 지금 도전해보지 않으면 또 언제해볼까 싶었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연극이 좋아지고 있어요. 결과물도 좋아야 할 텐데 (ㅜㅜ)”


○ 나의 ‘미키짱’은 ‘미쓰에이’

연극판은 영화, 드라마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연예인 출신이 힘들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에게는 3년이란 공백이 있었다.

“제가 그런 부분에 둔한가 봐요. ‘내가 열심히 하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연습 후 뒤풀이도 많이 참여해요. 그 다음날 너무 힘이 들어서 문제지 … 흐흐. 지금은 연습이 다들 힘들어서 뒤풀이도 잘 못해요.”

‘키사라기 미키짱’은 섹시 아이돌 스타 ‘키사라기 미키’에 열광하는 다섯 명의 오타쿠 삼촌팬과 가수의 죽음에 얽힌 에피소드를 다룬 작품이다. 2003년 일본에서 연극으로 초연됐고, 2007년에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2008년 제9회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 관객에게도 알려졌다.

김남진은 “내게도 ‘미키짱’이 있었다”라고 했다. 과거에는 엄정화, 김완선이었고, 요즘은 걸그룹 ‘미쓰에이’이다. 그렇다면 김남진의 ‘미키짱’을 보면 그의 이상형이 보일까.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 분들의 기운이 좋은 거죠. 강한 에너지. 어려서 김완선, 엄정화를 좋아했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멋있다’라는 느낌이었던 거죠.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그런 가수는 없었으니까.”

삼촌팬 역을 맡으면서 김남진은 ‘팬’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과거에는 팬들을 볼 때, ‘저 사람들은 나의 어떤 점이 좋은 걸까’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냥 자신이 출연하는 드라마나 배역을 좋아하는 것이라 여기고 말았다.

“3년이나 쉬고 있는 데도 미니홈피에 글을 남겨 주시고, 길에서 ‘혹시 김남진씨 아니세요’하고 알아봐 주는 팬들이 계시더라고요. 그제서야 ‘이 분들이 나를 좋아해 주시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하면 할수록, 더 알 수가 없어요.”

김남진은 ‘연극을 하길 참 잘 했다’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연극을 하는 순간이 행복하다고도 했다.
“꼭 대학 새내기가 된 것 같다”하길래 “복학생이 아니고요?”했더니, “아하하! 복학생이네요”했다.

“연습 시간에 늦을 때 ‘아이고, 형들한테 혼나지 않을까’, ‘연습하면서 오늘은 어떤 지적을 받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게 너무 좋아요. 예전 같으면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을 텐데. 그렇다고 기분이 좋은 건 아니지만,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걸 아니까요. 지금 마음 상태가 그런 것 같아요. 좋을 때죠. 어렸을 때 좀 더 빨리 느꼈으면 더 좋았겠지만. 사람마다 이런 순간이 오는 타이밍이 다른 것 같아요.”


○ 과도한 팬? “보면 알아요”


김남진은 ‘팬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자신이 ‘팬’으로 등장하는 작품인 만큼 ‘팬’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았다.

“연예인이라면 만인의 스타가 되는 건 누구나의 목표겠죠. 하지만 단 한 사람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수는 없죠. 어릴 때는 ‘연예인은 상품이다’라는 말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상품’이 맞는 것 같아요, 하하! ‘나’라는 ‘상품’을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죠. 싫어한다고 괴로워하지 말자. 싫어한다면 할 수 없다. 대신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잘 해주자. 이런 생각을 해요.”

모든 것이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한 법. 지나친 애정은 부담이 된다. 김남진에게도 부담스러운 팬이 있었을 것 같았다.

“사랑도 과하면 부담이죠. 보면 알아요. 사람이 다가왔을 때 눈빛이 다르거든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라는 작품 아시죠?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향기와 느낌이 있잖아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죠. 하지만 그런 감정도 다 받아줘야 하잖아요, 우리는.”

쉽게 믿기는 일은 아니지만, 김남진은 연기스승이 없다. 현장에서 스스로 부딪쳐가며 혼자서 연기를 익혔다.

“뮤직비디오가 처음이었죠. 카메라를 들이대더니 ‘연기를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연기의 ‘연’자도 모르는데 말이죠. 사진 촬영하다가 갑자기 ‘뮤직비디오 찍으러 오라’고 해서 간 거였거든요. ‘걸어라’하길래 걸었더니 막 찍더군요. 하루 만에 다 찍었죠.”

다행히 처음 찍은 뮤직비디오 반응이 좋아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부지런히 뮤직비디오를 찍다 보니 CF가 들어왔다. 갔더니 또 ‘연기를 하라’고 했다. ‘제품에 대해 즐거운 표정을 지어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따랐다.

이번엔 드라마에서 연락이 왔다. 대본을 주고 또 ‘연기를 하라’고 했다. 드라마는 좀 달랐다. 모델 출신이라 카메라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말’이 안 됐다. 당연히 연기가 이상할 수밖에.

“말도 마세요. 아시죠? 그 당시 스트레스 장난 아니었다니까요, 크크크”

첫 공연을 앞둔 김남진은 “꿈에도 등장인물이 나타난다”라며 웃었다. 꿈에서 공연을 하는데, 처음에는 대본대로 가는 듯하다가 꼭 어그러진다고 했다. 식은땀이 줄줄 난다. 매일 매일 다른 버전의 ‘키사라기 미키짱’이 그의 꿈 속에서 밤마다 재생산된다.

“연극은 앞으로도 계속 해보고 싶은 무대예요. 힘들지만 좋아하면 할 수 있는 거죠. 요즘 저는 제2의 삶이 제 앞에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제 첫 공연이 시작되면 온갖 일들이 벌어지겠죠. 즐길 겁니다. 여러분도 즐겨주세요.”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트위터 @ranbi361)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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