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상근]김제동과 해군기지

입력 2011-09-08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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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오피니언팀장 시절에 김제동 씨와 접촉했었다. 칼럼 요청을 수락하길래 실무적인 점을 안내하는데 그가 물었다. “동아일보 사시(社是)와 달라도 되나요?” 기자는 “국가보안법에 대해 쓰시게요? 주제는 원칙적으로 필자가 정합니다. 편하게 하시죠”라고 대답했다.


“이 예쁜 바다에 해군기지라니…”

김 씨는 2009년 상반기에 6편을 보냈다. 시사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산 타러 간다고요? 산등에 업히러 갑니다 △몽마르트르 언덕서 잠시 허탈했지요 △아빠들을 부탁합니다 △인생도 야구처럼, 9회말 투아웃부터 △힘겨워하는 20대에게 보내는 편지 △한국인의 恨이란 무엇일까요. 모두 부드러운 수필에 가까웠다.

칼럼 집필 기간에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했고(5월 23일) 김 씨는 서울광장의 노제에서 사회를 봤다. 하반기에도 칼럼을 게재하자고 타진하자 그는 사양했다. 왜 동아일보에 글을 쓰느냐고 주변에서 말린다는 얘기가 간접적으로 들렸다. 그의 칼럼은 중단됐다. 동아일보 사시를 건드리지 않아서였을까, 불편한 일이 생기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여기까지는.

그의 이름은 이듬해 2월부터 경향신문에 등장했다. ‘김제동의 똑똑똑’이라는 인물탐방이었다. 박원순 변호사, 홍명보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 노무현 재단이사장 문재인, 알바 대학생,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가수 이효리….

동아일보 필진이던 김 씨가 각계각층과 얘기를 나눠 흥미 있게 읽었는데 작년 4월 15일자가 눈길을 끌었다. ‘이 예쁜 바다에 해군기지라니…생각만 해도 화가 나’라는 제목. 해녀의 말에 김 씨가 덧붙였다. “얼마나 속이 상하시겠나. 이 예쁜 바다, 이대로 그냥 놔두는 건 정말 불가능할까?” 바다에서 37년을 지낸 해녀에게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을 수 있다. 이해할 만했다. 여기까지는.

그는 올해도 제주 해군기지에 대해 언급했다. 6월 17일 강정마을 바닷가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리기 전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해군기지를 짓는 것은 적들이 파괴하기 전에 아군이 선제 파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24일에는 강정마을 회장이 구속되자 “해군기지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김 씨의 발언을 접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아름다운 곳에는 군사기지를 지으면 안 되나. 군사기지 건설이 아군의 선제 파괴인가.

스위스는 핵 공격에 버틸 만한 대형 지하방공호 3500개를 포함해 공공대피소 27만 개를 전국에 만들었다. 알프스 산맥과 호수 주변도 마찬가지다. 동화에 나올 법한 집집마다 군복 무기 탄약을 놓은 무기고가 있다.


안보 문제에 감상적 접근 곤란

우엘리 마우러 스위스 국방장관은 한-스위스 장관회담을 위해 7월 방한했을 때 “1960년대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에 지하 방공호 설치를 의무화했다. 그 결과 주택과 빌딩의 95%가 지하 방공호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위스는 1815년 영세중립국 선언 뒤, 한 차례도 외침을 받지 않았다. 국토의 대부분인 아름다운 산맥 곳곳의 방공망과 국민개병제도 덕분이다. 한국은 3면이 바다다. 분쟁의 파고가 높아질 동중국해에서 제주의 해군기지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안보 문제에 감상적 접근은 곤란하다.

촌철살인의 한마디로 ‘김제동 어록’을 유행시킨 방송인, 한국신문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신문 읽기 스타’(2006년), 진솔한 문장으로 독자를 위로했던 칼럼니스트. 사회적 발언의 수위를 높이기 전의 김제동 씨가 그립다.

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songmoo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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