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문, 사석에선 분위기 메이커”

입력 2011-11-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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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부터 일본 미야자키현 피닉스골프장에서 열린 던롭피닉스 토너먼트에 출전 중인 한국 프로골퍼 김도훈(왼쪽)이 배상문의 퍼팅 연습을 바라보며 스윙을 체크하고 있다. 사진제공 | KGT

日 진출 한국골퍼들의 생활 엿보기

경기 끝나면 호텔방서 TV 보는게 전부
매번 비슷한 음식…몸 편해도 마음 허전


일본 프로골프투어에서 뛰는 한국선수는 어림잡아 20명 남짓. 10년 전과 비교하면 3∼4배는 많아졌다. 어느덧 최고참이 된 허석호는 10년째 일본무대에서 뛰고 있고, 올해 깜짝 우승을 신고한 황중곤은 루키 시즌을 보내고 있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한국 남자골퍼의 생활은 어떨까.


● 한국선수 분위기 메이커는 배상문

한국선수들이 많아지면서 올해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 우승한 선수가 동료들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정겨운 풍경이다. 메뉴는 그때그때 다르다. 대회가 열린 지역이 해안가에 있으면 대게와 스시 같은 해산물 파티가 열리고, 주변에 한국식당이 있으면 간단하게 김치찌개를 먹기도 한다. 허석호는 “메뉴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한국 선수들끼리 모여서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처음엔 인원이 많아서 함께 모여 식사라도 한번 하자고 제안했는데 이제는 우승할 때마다 함께 모이게 되면서 분위기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여럿이 모이면 으레 분위기를 주도하는 인물이 따로 있는 법. 일본에서 그 주인공은 배상문이다. 활기차고 사교성 좋은 평소 성격 그대로다.

김형태는 “상문이가 말하면 뭐든 다 웃긴다. 원래 성격도 밝은데다 대구 사투리를 섞어가면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같은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웃기고 재미있다. 한국선수들 중에선 당연 최고의 분위기 메이커다”고 귀띔했다.

대화의 주제는 주로 경기 뒤풀이다. 서로의 경기 내용을 되짚어보거나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물론 골프 얘기만 하는 건 아니다. 젊은 선수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연예인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요즘 최고의 화제는 ‘슈퍼스타 K’라고 했다.

박재범은 “경기가 없을 때는 TV를 보면서 어느 팀이 우승할 것인지 예상하면서 머리를 식힌다”고 했다.

배상문이 분위기 메이커라면 김경태는 포커페이스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절대 피해를 주지도 않는다. 또 한국선수들과 함께 모여 연습하다가도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그걸로 끝이다. 철저하게 계획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한국 선수들.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도훈, 배상문, 조민규, 황중곤. 사진제공 | KGT



● 경기 끝나면 호텔서 독수공방

대부분은 호텔에서 생활한다. 모두가 부러워할 호텔 생활이지만 막상 당사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거의 독수공방 수준이다.

호텔 생활의 장단점은 분명하다. 장점은 편안함이다. 호텔 내에서 식사와 휴식, 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어 좋다. 혼자서 투어 생활을 하는 선수들은 모두 이렇게 생활한다.

단점은 음식과 외로움이다. 한국음식을 해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늘 한국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남자 혼자 생활하다보니 어떤 때는 끼니를 제 때 챙겨 먹는 것조차 쉽지 않을 때도 있다. 아무래도 혼자 생활하다보면 귀찮아지기 마련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는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은 더 커졌다. 특히 일본에서 거주하는 선수들에게는 걱정이다.

가족과 함께 고베에서 생활하고 있는 허석호는 “예전에는 음식에 대한 걱정을 전혀 해보지 않았는데 최근 걱정을 많이 하게 된다. 어른들이 먹는 거야 큰 문제가 없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무거나 먹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음식은 한국에서 공수해온다”고 불편함을 전했다.

외로움도 선수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호텔 생활은 편안한 뒷면에 외로움이 뒤따른다. 일본에 아는 지인이라도 있으면 덜하겠지만 대부분은 경기를 끝내면 호텔방에서 TV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는 게 고작이다. 당연히 마음이 허전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일본에서 집을 구해 생활하는 선수도 많지 않다. 결혼해서 10년 정도 활약한 허석호와 장익제 등이 고작이다.

미국에서 투어 생활을 하는 선수들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미 PGA나 LPGA 투어로 진출하는 선수들을 보면 가장 먼저 집부터 구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일본에서 오랫동안 정착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 대부분 일본에서 투어생활을 하면서 미국이나 유럽 같은 더 큰 무대로 옮기고 싶어 한다. 다시 말해 일본은 거쳐 가는 무대다.

고물가에 비싼 생활비와 높은 집값도 집을 사지 않는 이유다. 시즌이 시작하면 거의 매주 대회가 열리기 때문에 일본 전 지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따라서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적다. 또 대회가 없는 기간엔 아예 한국으로 건너간다.

배상문은 “호텔 생활이 편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경기를 끝내고 호텔에 들어오면 허전한 느낌이 든다. 또 매번 비슷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면서 “그렇다고 굳이 집을 얻기도 그렇다. 그냥 호텔에서 집처럼 생활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한편 18일 일본 미야자키현 피닉스 골프장에서 열린 일본프로골프투어 던롭피닉스 토너먼트 2라운드에서는 허석호(38)가 중간합계 3언더파 139타를 쳐 공동 11위에 올랐다. 한국선수 중 가장 높은 순위로 2라운드를 마쳤다.

미야자키(일본)|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na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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