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MBC ‘우리들의 일밤-남심여심’으로 복귀한 정선희. 그는 자신을 편하게 맞아줄 시청자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기다릴 준비가돼 있다며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방송인 정선희(40)는 시간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008년 남편 안재환을 잃고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아픔에서 그를 일으켜 준 것도 시간이었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나야 했던 예능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준 것도 시간이었다.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MBC ‘우리들의 일밤’의 새 코너 ‘남심여심’으로 4년 만에 지상파 예능에 복귀한 정선희를 만났다. 그는 변함없는 유쾌함 속에서 묻어나는 진지함으로 과거와 미래를 덤덤하게 풀어냈다.
● 4년 만에 ‘일밤’ 진행자로 복귀…“나는 예능 보물 캐내는 광부”
- 4년 만에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다.
“생각지도 못했고, 원하지도 않았던 긴 공백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찾아온 새 일은 신선하고 자극이 된다.”
- 첫 방송 시청률이 2.7%로 생각보다 많이 낮다.
“시작부터 경쟁이 안됐다. ‘1박2일’과 ‘K팝스타’가 버티고 있는데. 시청률 욕심은 없었다. 우리끼리 ‘적어도 우리 방송을 본 사람들이 욕은 안하게 하자’면서 뛰었다.”
- 예능 복귀를 반기는 사람이 많아졌다.
“조심스럽지만 주변을 통해 느끼고 있다. 시간의 덕분이다. 살다보면 그 당시 무엇보다 심각했던 문제가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도 있듯이. 나 역시 그 때는 세상에 섭섭하고 억울한 부분이 많았다. 기다린 시간에 대한 조그만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 하지만 방송에서 여전히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은 내 스스로 편집하는 것들이 있다. 내가 방송에서 조심하는 건 예의다. 나를 편하게 봐줄 준비가 되지 않은 시청자들을 위한.”
- ‘일밤’은 왜 정선희를 원했을까.
“예전에 가지고 있던 특유의 공격성이나 언변. 그리고 라디오 진행에서 얻은 예민하게 열린 귀가 아닐까. 함께 출연한 친구들의 작은 목소리도 캐치해 기회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기대한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는 숨겨진 예능 보물들을 캐내는 광부다.”
- 그럼 반대로 정선희는 왜 ‘일밤’을 택했나.
“그토록 원하던 예능이니까. 출연 제의를 한 것에 대한 고마움이 컸다. 아직 애매하지 않나. 큰일을 겪은 내가 나와서 시청자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때가 맞는지 판단하는 건 제작진의 몫이니까. 고마웠다.”
● 나를 치료해 준 시간, 시청자들과의 거리도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믿는다
- 많이 편해진 것 같다.
“천성이 본래 어두운 사람이 아니다. 비관하는 것도 싫고, 드라마도 신파는 별로 안 좋아한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힘들고 아픈 사람들이 많다. 내 슬픔을 뽐내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다.”
- 예전의 정선희다운 모습이 살아나고 있다.
“내가 무슨 신비주의 연예인도 아니고. 자존심은 좀 상하고 모양은 빠져도 내 성격대로 다가가고 싶었다. 몇 년 외국에 나갔다 온다고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답게.”
- 4년 동안 예능과 한 발짝 떨어져서 지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다시 갈 수 없는 세상 같았다. 그 쪽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데 나만 어둠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4년은 나에게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 시청자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정선희의 남은 과제는 뭘까.
“역시 시간이다. 가끔 프로그램에서 나와 과거의 일들이 연관된 단어가 나와도 더 이상 불편하지 않다. 그 문제와 나를 구분지었다. 적어도 괜찮은 척하지는 않을거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척이 아니라 정말 괜찮아진거다.”
- 방송 활동에 가장 큰 자극을 주는 존재가 있나.
“열 살짜리 조카다. 내가 그 일을 겪었을 때 다섯 살이었던 꼬마가 벌써 열 살이 됐다. 자세히는 아니지만 조카도 조금은 알고 있다. 언제가 나한테 ‘고모는 참 강한 사람 같아’라고 했다. 인터넷으로 내 이름을 검색해 이런 저런 뉴스들을 보고 한 말이었다. 조카 보란 듯이 앞으로는 좋은 뉴스로 도배시켜버리고 싶다.(웃음)”
- 2012년 정선희의 봄은 행복한가.
“고민할 것 없이 행복하다. 정말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내 뒷모습을 봤을 때 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그런 선배들이 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강한 뒷모습을 남긴. 나를 지켜봐준 사람들에게 그런 뒷모습으로 남고 싶다.”
김민정 기자 ricky33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icky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