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 이시영, 배탈난 몸으로 결승전 뛰었다

입력 2012-07-09 14: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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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닷컴]

“이시영씨가 결승전 당일 아침을 잘못 먹어 배탈이 났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스텝이 무뎌지더라구요.”

‘배우 복서’ 이시영(30·잠실복싱)이 복싱대회 결승전 당일 제 컨디션이 아닌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이시영은 7일 서울시 송파구 오륜동 한국체대 오륜관에서 열린 제42회 서울시장배 아마추어복싱대회 겸 제 93회 전국체육대회 서울시선발전 48kg급 결승전에서 여고생 복서 조혜준(18·올림픽복싱)을 21-7, 판정승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복싱 관계자들은 이시영의 강점으로 긴 리치(팔 길이)와 함께 경쾌한 스텝을 꼽았다. 달려드는 상대를 피하면서도 효과적인 펀치를 날릴 뿐 아니라, 구석에 몰려도 잘 빠져나온다는 것. 클린치(껴안기) 상황에서 뿌리치는 모습을 보면 ‘체중에 비해 힘도 상당하다’라는 평이다.

하지만 이날 이시영은 지난 준결승에 비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조혜준의 저돌적인 인파이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 1-2라운드에서 여러 차례 몰리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어느 정도 점수 차를 벌린 3-4라운드에는 체력 문제도 드러냈다.

그러나 이시영을 지도하는 잠실복싱클럽 배성오 관장은 동아닷컴과의 전화통화에서 “결승전 정도면 잘했다. 자기 기량의 50% 정도는 발휘했다고 본다”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배 관장은 “이시영씨는 신체조건이 워낙 좋아 아웃복싱 스타일로 지도했다. 지난해 5월 우리 클럽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스텝 교정이었다”라며 “제가 현역 시절 복싱을 다리로 하는 편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이시영은 심판의 승리 콜에도 창백한 얼굴로 미소조차 짓지 못했다. 경기 후에는 황급히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약 2시간여가 지난 시상식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시영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왔다. 배 관장은 이시영이 힘들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털어놓았다. 배탈이었다.

“이시영씨가 결승전날 아침을 잘못 먹어서 배탈이 났어요. 다리가 마음대로 안 움직이니까, 스텝이 너무 무뎌지더라구요.”



배 관장은 이시영에 대해 “운동능력도 48kg급에서는 국내 정상급이다. 전국대회에서도 통할 수 있는 기량이라고 본다”라며 “결승전에서 이긴 조혜준 선수는 종합선수권에서 준우승까지 한 좋은 선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시영은 "연습한 대로 잘 되지 않아 관장님께 면목이 없다"라고 했다. 이시영은 이날 경기에서 카운터를 때릴 때 가드가 내려가는 점, 상대가 첫 잽을 피해 안쪽으로 파고들 때 당황하는 점, 훅이나 어퍼가 없는 점 등이 약점으로 지적됐다.

“훅이나 어퍼를 제대로 때리려면 이시영씨가 배우 그만두고 복싱만 해야 되는데… 그건 좀 어렵죠. 이번 대회도 3개월 정도 준비했거든요. 잽과 원투 스트레이트만으로 우승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인파이터가 치고 들어올 때 받아치는 걸 집중적으로 연습했거든요.”

이시영은 결승전이 끝난 뒤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맞는 게 무섭긴 하다.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다”라면서도 “가벼운 마음이나 취미, 재미로 (대회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복싱은 내게 인연인 것 같다”라고 환하게 웃어보였다.

배 관장이 보는 이시영은 때로는 독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한 의지력의 소유자다.

“직업이 배우니까, 중간중간 쉬는 기간이 많거든요. 그래도 밤이고 새벽이고, 틈나는 대로 찾아와서 운동하더라구요. 지방에 촬영 갔다가도, 다녀오는 대로 또 체육관 와서 뛰고. 복싱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느껴집니다.”

서울시체육회 측은 "이시영이 원한다면 51kg급 선수와의 평가전을 통해 전국체전 출전도 노려볼 수 있다"라는 입장을 표했다. 전국체전에는 플라이급(48-51kg), 라이트급(47~60㎏), 미들급(69~75㎏) 등 3체급만이 있기 때문에 이시영을 위한 특별 규정이 필요했던 것. 하지만 이시영 측은 "전국체전 출전 계획은 없다"라고 밝혔다.

동아닷컴 김영록 기자 bread42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출처|스포츠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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