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쇼트트랙 황제’가 청년백수로…“안현수를 원하는 곳이 없었다”

입력 2011-04-12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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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 동아일보 DB

안현수. 동아일보 DB

●성남시청 팀 해체…지난해 12월 30일부로 월급 끊겨
●이재명 시장 “난 인권변호사, 이런데 돈 못 쓴다”
●“참 쉽다. 참 일방적이야”…안현수 미니홈피에 자조적 글 남겨

“안현수 하면 쇼트트랙의 황제잖아요. 천하의 안현수가 무적 선수로 풀렸는데, 어느 팀에서도 안 데려간다는 게 말이 됩니까?”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3관왕, 2003-2007년 5년 연속 세계선수권 종합우승. 안현수(27, 글로벌엠에프지)의 화려한 경력이다. 하지만 그런 안현수가 ‘마음 편하게 운동하고 싶어서’ 한국을 떠나 러시아로 간다.

대한빙상경기연맹 관계자는 11일 전화 인터뷰에서 안현수가 러시아로 간다는 소문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며 “안현수가 새 소속팀도 구했고, 대표 선발전에도 출전하는 만큼 그럴 리가 없다”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재 안현수와 함께 훈련하고 있는 황익한 전 성남시청 감독에 따르면, 안현수는 어느 정도 러시아로 갈 마음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황익한 감독 “그동안 악에 받쳐 국가대표 선발전 준비”

황 감독은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국가대표 선발전이 끝난 뒤에 정확한 거취를 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현수는 황 감독을 통해 ‘대회 이전까지는 언론과 접촉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전했다.



안현수에게는 일본과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꾸준히 제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안현수는 2014년까지는 충분히 선수로 뛸 수 있다는 입장이며, 이를 위해서는 러시아가 가장 좋다고 판단했다는 게 황 감독의 말이다. 러시아 빙상연맹과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 씨가 조율한 결과라고 했다.

“국가대표에 뽑히면 어느 팀이든 연락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당연히 견제하겠지만, 그런 거 다 이겨내는 게 안현수 아닙니까? 저하고 이번 국가대표 선발전까지만 해보자고 했어요. 그 동안 정말 악에 받쳐 준비해왔습니다.”

안현수의 러시아행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은 소속팀인 성남시청 쇼트트랙 팀의 해체다.

재정악화로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을 선언한 성남시청은 지난해 12월 30일 부로 소속 15개 체육팀 중 하키, 펜싱, 육상 3종목을 제외한 모든 팀을 해체했다. 80여명의 선수와 감독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다.

황 감독은 해체하던 날 이재명 시장이 한 말을 잊을 수 없다며 이 같이 전했다.

“'직장운동부 1명이면 가난한 아이 3명을 도울 수 있다, 나는 인권변호사 출신이라 이런 데 돈 못 쓴다'라고 하시더군요. 아무리 그 분이 운동을 모르시는 분이지만, 안현수 같은 선수를 잘라내서 뭘 얻자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대해 성남시청 체육팀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직장운동부 관계자들과 시장이 만난 자리에서 ‘선수 5명의 인건비면 지역아동센터 등 시 추진사업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던 발언”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그 자리에 안현수 선수는 없었고 이후에도 찾아온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해외에서는 계속 연락이 오는데… 한국에서는 4개월 째 백수

성남시청을 나온 안현수가 갈 곳은 없었다. 국내 어느 팀도 ‘황제’ 안현수를 스카우트하지 않았다.

안현수는 황 감독과 함께 무소속으로 대회를 준비해왔다. 지난 2월 동계체전과 3월 쇼트트랙 종합선수권에는 ‘경기 일반’으로 출전했다. 안현수가 ‘경기 일반’으로 출전하는 게 너무 가슴이 아파 작은 스폰서를 얻은 것이 지금 소속팀으로 표기되는 글로벌엠에프지다.

황 감독이 보는 안현수의 몸 상태는 전성기의 90% 정도. 부상은 다 나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안현수를 다른 나라로 보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무 수입도 없이 미래가 불투명한 게 벌써 4개월입니다. 나이도 스물일곱인데, 안현수 같은 선수가 하루아침에 청년실업자가 된 거예요. 대회에서는 계속 성적을 내고, 해외에서는 계속 연락이 오는데…. 정 국내에서 더 이상 뛸 수 없다면 나를 불러주는 곳으로 가겠다는 거죠. 제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세요.”

최근 황 감독은 실업자 수당을 신청했다. 그것이 그가 이끌고 있는 ‘전’ 성남시청 쇼트트랙 팀의 슬픈 현 주소다.

소식이 알려지자 안현수의 팬카페와 미니홈피, 관련 커뮤니티에는 당황한 팬들의 글이 넘치고 있다. 하지만 ‘떠나지 말라’는 내용보다는 ‘아쉽지만 이해한다.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다’, ‘올림픽 3관왕을 이렇게 보내야하다니’ 등의 반응이 대부분인 것이 눈에 띈다.

2월 26일, 안현수는 자신의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이렇게 남겼다.

‘한 번이면 됐어. 한 마디면 충분했다고. (중략) 지금도 충분히 위태로워. 이러다가 나도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참 쉽다. 참 일방적이야.’

동아닷컴 김영록 기자 bread42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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