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을 만나다④] ‘철학가’ 피타입의 ‘힙합이란 무엇인가’

입력 2015-04-06 04: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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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가요계에서 힙합은 유례없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쇼미더머니’, ‘언프리티랩스타’ 등이 방송되는 날이면 포털사이트의 검색어를 힙합 가수들이 싹쓸이하며 각종 음원차트 상위권에도 힙합 가수들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힙합을 지향하는 음악가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단순한 덩치키우기를 넘어 질적으로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한국 힙합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는 지금, 이를 이끌어나가고 있는 언더와 오버의 다양한 뮤지션을 ‘힙합을 만나다’코너를 통해 만나보자>>

피타입, 사진|브랜뉴뮤직


피타입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나름대로 내린 한 가지 결론은 그는 뮤지션을 넘어 철학가라는 수식어도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성균관대 철학과 출신이라는 학력과 자신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푸코와 헤겔, 하이데거 등을 언급한 최초의(아마 마지막도 될 것 같다) 인터뷰이라는 점이 이런 결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지만 이는 부가적인 이유일 뿐으로, 피타입을 철학가라고 부를 수 있는 진짜 이유는 힙합을, 음악을, 문화를, 나아가서는 현대사회와 삶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가치관과 개념, 사상을 명확히 정립하고 이를 실천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사운드적으로, 장르적으로 피타입의 음악을 즐기자면 그의 철학과 사상을 알지 못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의 음악 저변에 깔려있는 철학적 사유와 사상까지 보고자한다면 이에 대한 개념을 먼저 파악하고 음악을 들어보기를 권유한다.

※그리고 이 인터뷰는 앨범에 대한 이야기보다 피타입의 사상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을(
또 굉장히 장문의 인터뷰임을) 미리 알려두는 바이다.

본격적으로 글에 들어가기 앞서 확실히 말해둘 점은 피타입은 철학가이지 혁명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말고는 철저히 리스너들의 몫이다.

피타입 스스로도 “나는 혁명가는 아니다”라고 이를 인정했다. 사실 ‘철학자’라는 평 역시도 인터뷰어가 멋대로 내린 결론으로, 피타입은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것이다. 거기에 대해 내가 이래라 저래라 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니냐”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사실 이 대답 역시도 그의 사상이 담겨있다)

다만 피타입은 “1집을 만들 때 주위에 생각 있으신 분들이 너무 급진적이고 위험하고 니 나이 때 설익은 상태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때는 그럴 정도로 과격한 언어로 가사를 썼고, 그때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그렇다’라고 했을 수도 있다”라며 “지금은 그냥 존 도우(신원미상의 남성을 통칭하는 임시名. 보통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임)다. 직업이 아티스트라고 해서, 무대에 올라가는 게 직장에 출퇴근하는 것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피타입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은 ‘힙합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런저런 대답이 있겠지만 피타입은 힙합을 ‘문화’라고 정의했다.

어찌 보면 무난하고 당연한 대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하면 이는 상당히 흥미로운 개념이다.

피타입은 힙합을 문화라고 정의하면서 힙합을 하나의 음악 장르로 한정짓는 것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04년 1집을 발표할 때부터 힙합을 음악장르로 접근하는 것에 굉장한 괴리감을 지니고 있었다”며 “그때 당시 한일 힙합 페스티벌이 열렸는데, 지금 힙합 페스티벌처럼 무대에 올라가 돌아가면서 노래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그래피티와 라이브 페인팅이 있었고, 비보잉이 있었고, 거기에 힙합 뮤직이라는 하나의 요소가 더해져 완성되는 그림이었다”라고 장르음악으로서의 힙합은 넓은 의미의 힙합 안에 속한 하나의 요소일 뿐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 같은 ‘문화’로서의 힙합과 ‘음악장르’로서의 힙합 간의 괴리는 피타입이 2008년 음악 활동을 그만두고 직장인의 삶에 뛰어들게 한 이유로도 작용했다.

피타입은 “서른 살을 목전을 두고 ‘이게 맞나. 고행하듯이 힙합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게 가능할까’하는 고민을 하게 되더라. 힙합 안에서 머물고자 할수록 분명히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멀쩡한 꼴로 살아가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음악을 할 때 하더라도 팔리는 음악을 해야 하는데, 다시 힙합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힙합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노래를 하는 게 맞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바운더리를 넓혔다. 예전에 (내 음악을)네오 소울이나 퓨쳐 재즈라고 한 이유이다. 힙합 보다는 힙합의 소스가 된 옛날음악을 사랑하는 게 아닌가, 그게 더 큰 바운더리가 아닌가 생각했다. 적어도 힙합을 한다고 해놓고 그런 음악을 하는 건 위선 같았다”라고 2집 이후 음악 작업을 그만둔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이미 내 머릿속에는 그런 아이덴티티가 정리는 됐지만 또 삶이라는 건 다른 이야기다보니 직장 생활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라며 “그렇게 시작한 직장이 처음 3년간은 정말 군대 같았다. 정신없이 일했고 3년 후에 이직을 하고 숨통이 트이더라. 웃긴 건 당시 만나던 연인도 직장생활을 한 이유인데, 막상 취직을 하고 너무 바쁘다보니 얼마 못가 헤어졌다”라고 소소한 에피소드를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차츰 직장인의 삶에 적응해 가던 피타입이 다시 음악을 하기로 결심한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았다. 그저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는 “사람마음이 간사한 게 조금 더 편해지고 시간이 되다보니 다시 음악을 하고 싶어졌다. 직장생활의 마지막 1년은 음악으로 돌아오기 위한 준비라기보다 (직장생활에서) 떠날 준비를 했던 것 같다”라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오해하고 있는 점은 피타입이 은퇴를 선언했다고 알고 있다는 것으로, 그는 사실 ‘음악을 완전히 그만두고 은퇴하겠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힙합씬 안에 하나의 장르 뮤직으로서 힙합을 하지 않고 조금 더 넓은 음악을 하겠다는 의미에서 ‘힙합을 하지 않겠다’라고 한 발언이 음악을 그만뒀다는 오해를 불러왔다.

이에 피타입은 “힙합이라는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로컬라이제이션(토착화)가 가능할 것인가, 장르로서 힙합이 아니라 문화로서 얼마만큼이나 지속가능성이 있는가를 판단했을 때 그때 당시에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능하다고 봤으면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우리들이 아무리 리얼한 힙합 라이프를 외쳐도 사람들은 독특한 뮤지컬 스타일을 원하고 생각하더라. 그 인식을 바꾸는 게 가능할까 생각해보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라고 당시 발언에 대한 배경을 설명했다.

여기서 하나의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피타입이 ‘힙합 안 할래요’라고까지 말하며 떠났지만 그가 주장했던 문화로서 힙합의 토착화는 떠날 당시와 전혀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타입은 “사실 다시 돌아왔을 때 조금의 진일보도 없어서 짜증이 났다. 마켓의 사이즈만 커졌다. 이 로컬라이제이션 자체가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고민을 이어간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 그 주제를 굉장히 많이 거론했다”라고 이십년 가깝게 지속된 고민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알렸다.

피타입, 사진|브랜뉴뮤직


이쯤에서 한 가지 더 정의하고 넘어갈 것이 ‘힙합이 문화라면, 그럼 문화는 무엇인가’이다.

피타입은 이에 대해 “나는 문화는 자연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가공하고 만들어낸 것이 문화이고,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 즉 삶의 방식(라이프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그러니까 힙합은 '직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라이프 스타일로 사는 거'다”라고 정의했다.

여담이지만 피타입이 힙합을 ‘폭력적인 잡종문화’라고 표현한 것 역시 ‘힙합=문화’라는 정의에 의거한다.

피타입은 “‘폭력적 잡종문화’라는 표현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뉘앙스에 네거티브가 없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그 말이 틀렸냐라고 물으면 동의 할 수 없다. 힙합이 폭력적으로 비춰질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문화는 맞다. 일례로 배틀이 있는 문화는 힙합 밖에 없지 않나. 폭력이라는 단어가 지니고 있는 파괴적, 범죄적 이미지는 있다고 하지만 뜻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잡종 역시 마찬가지다. 잡종을 사전으로 돌리면 하이브리드(Hybrid)라고 나온다. 잡(雜)이라는 단어가 과거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비하의 의미로 쓰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독을 했다. 이 표현자체는 힙합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성향, 음악장르가 아니라 문화로서 성격을 의미하는 거고 그 성격이 우리나라에 정착할 수 있느냐 하는 함의였다”라고 논란을 불러왔던 표현의 정확한 의미를 밝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피타입의 정의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힙합은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마켓의 크기만 커진 기형적인 상태이다. 힙합씬이 기형적인 형태를 띠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피타입은 이를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에서 찾았다.

그는 “‘쇼미더머니’에 나가서 줄 서는 3~4000명의 아마추어들 중에서 과연 몇 사람이나 ‘살고 있을까’하는 것이 궁금하고 그 부분이 (힙합씬의)기형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대한민국은 초, 중, 고 12년 동안 대입이라는 하나의 관문만을 보는 시스템이다. 좋은 대학에 가서 대기업에 취직한다는 코스를 설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은 직장에 가야 결혼도 하고 부동산도 산다는 미끼를 던지고 있다. 문제는 대학을 나와도 취직을 못하고 취직을 해도 부동산을 못 사면서 이 레이스 시스템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 공식이 깨지다보니 애들이 ‘대학을 왜가는 거지? 안가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라며 브레이크 걸기 시작했다. 그런데 웃긴 건 이 아이들이 대입이라는 목표를 지운순간 ‘뭘 하고 행복하게 살아야하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 이제 뭘 먹고 살아야하지? 어떤 직업을 해야 하지?’라고 생각한다”라고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했다.

피타입은 “아이덴티티를 고민하는데 있어 바로 잡(Job)이라는 게 들어간다. 굉장히 비뚤어진 가치관이다. 그 와중에 힙합이라는 게 훌륭한 옵션으로 등장한다. ‘저 사람들은 몸에 문신도 하고, 노래에 욕도 하고, 좋은 브랜드에 멋진 옷 입고 하는데 대학을 안 나왔어’ 얼마나 달콤하냐?”라며 “‘힙합’이란 명사를 다른 걸로 대처해도 똑같다. 연예계로 바꾸면 왜 연예인이 학생들 희망직업 1순위인지 왜 ‘슈스케’는 그렇게 지원자가 몰리고 왜 ‘케이팝스타’ 같은 오디션이 계속 나오는지 모든 비밀의 열쇠가 풀리더라”라고 교육시스템과 직업의 상관관계에서 현재 국내의 기형적인 힙합씬과 음악시장에 대한 원인을 찾아냈다.

다시 한 번 “힙합이 직업화 되면 안된다”라고 강조한 피타입은 “힙합을 직업으로 생각하고 음악장르로 인식하면 그 음악의 특성만 알면 된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배우고 좋은 선생님 만나서 ‘쇼미더머니’ 나가고 TV 나오고 돈 벌어 우리 부모님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라는 공식이 성립하더라. 물론 관점에 따라선 음악의 한 스타일로 보는 건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힙합씬에 들어오는 사람이 힙합을 하나의 장르로 인식하면 결국 폼과 테크닉적인 부분만 추구하고 삶의 가치관으로 보는 게 아니게 된다. 그 부분에서 갭이 생긴다”라고 힙합의 직업화, 장르화를 경계했다.

여기서 피타입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한 가지 의문이 있다. 힙합 팬들에게 알려진 피타입의 공식 수식어는 ‘라임의 선구자’로, 이는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그 역시도 테크니션이라는 범주에 포함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피타입은 “그건 ‘피타입’이라는 텍스트만 두고 봐도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내가 앨범에 대해 말할 때 1집과 4집만 힙합이라고 한정짓는 이유가 무엇인가. 2집과 3집은 힙합이라고 말하지도, 그럴 생각도 없다. 힙합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라임테크닉 같은 건 늘 거론되어 왔다. 그 부분에 비밀이 담겨있다”라고 우문에 현답을 내놓았다.

이처럼 확고한 사상과 철학을 지닌 피타입은 이를 후배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실제 교수로도 활동한 이력을 지니고 있는 피타입이지만 지금은 이 타이틀을 버리고 자신을 찾아오는 수강생들만을 받아 개인 레슨만을 진행하고 있다.

피타입은 “지금은 교수라는 직책을 모두 내려놓았다. 지금도 요청은 계속 오는데 아마 죽을 때까지 교수로 대학 강단에 서는 일은 없을 것 같다”며 “지금 대학은 직업교육원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대학에서 전공지식을 쌓고 관련 직종에 취업하는 게 대한민국의 레귤러한 생각이지 않나. 그래서 대학에 가는 순간 힙합의 직업화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힙합이 전공이 되는 순간 장르를 가르치고, 장르를 가르치면 직업이 된다는 생각이다”라고 대학 교수로 누군가를 가르칠 일은 없을 거라고 알렸다.

대신 그는 ‘가르침’ 그 자체는 앞으로도 계속 하겠다는 생각이다. 피타입은 “누군가 가르치는 행위자체는 힘이 닿는 한 계속 할 거다. 한 장의 앨범을 내놓는 것도 소중한 일이지만, 2~3년 걸려 한 장의 앨범을 내고 결실을 얻는 것보다 1년간 100명의 아이를 가르쳐서 세상밖에 내놓는 게 더 가치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있다. 어떤 생각을 페이스 투 페이스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린다는 건 한편으로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직접 학교를 설립하겠다는 뜻은 또 아니다. 그는 “미셸 푸코가 공간에 대한 고증을 많이 하지 않았나. 정신병원을 중심으로 ‘광기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교도소를 중심로 ‘감옥의 역사’에 대해 말하는데, 하나의 공공 목적을 가진 기관으로서의 공간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그것처럼 어떤 건물을 세우고 이 안와 밖을 나누는 순간 내가 하려는 것에 많이 지장을 받고 혼선이 올 것 같다. 큰 작업실 얻고 더 사람을 받을까 하는 생각까지는 있지만 시스템화 하고 싶지는 않다”라고 덧붙였다.

구어를 문어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특유의 뉘앙스와 느낌이 조금씩 달라진 부분이 있을순 있지만 피타입의 사상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은 이러하다. 그리고 이런 철학과 사상은 앞으로의 앨범에서도 꾸준히 담길 전망이다.

피타입은 “4집 자체는 힙합씬으로 돌아와 만든 음악이고 스스로 아이덴티티 자체도 힙합으로 박아 논 앨범이다. 첫 트랙 자체가 그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다”며 “사실 ‘3집을 낼 때 힙합을 다시 입어도 되나?’하는 것에 불확실했었고 그 불확실함은 2008년에 ‘우리나라에서 힙합 문화의 로컬라이제이션은 불가능해’라고 했던 발언에 아직도 사로잡혀 있었던 결과다. 살아보지도 않고 인생 아는 척했다는 그 죄책감은 있다. 하지만 4집을 만들면서는 ‘적어도 2008년부터 지금까지는 버텼지 않나. 가능은 해’라고 확신했다”라고 결국 힙합이라는 옷을 다시 입게 된 이유를 부연했다.

이어 “후배들은 크루를 만들어 라이프 스타일을 공유했고, 홍대를 중심으로 마켓 자체를 비대하게 키워왔다. 그 비대함이 나쁘냐 좋냐를 떠나서 분명히 지속되어왔다. 내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가능할 수도 있지 정도로 생각이 바뀌었다. 어떤 판단을 내리고 못을 박기보다 모르는 문제긴 하지만 살아보자, 다만 그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자는 생각이다. 힙합씬이 기형적이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어떤 모양새가 아니어서 실망하는 사람도 많은데 사실은 그런 모든 단면 하나하나를 만들어가는 게 우리 공동의 연대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마냥 비난만 하는 게 옳은가? 그 비난을 무시하고 일신의 안위를 취하는 행보를 걷는 건 옳은가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힙합이 랩이라는 특정 아트폼으로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갖게 되면서 세상밖에 크게 내지를 수 있는 것이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외면해서도, 그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해서도 안 된다. 래퍼들의 창작이나 목소리의 다양성을 하나로 제련하려는 시도도 옳지 못한 관점이고 마냥 자유롭고 아무렇게나 해도 표현의 자유라고 하느 것도 올바르지 않다. 이런 것들이 잘 조화가 돼야 이런 기형적인 구조를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치고받고, 실수하고, 수정하고...그러는 게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발전적인 고민이 지속되기를 기원했다.

끝으로 피타입은 “헤겔의 변증법이 너무 신기해서 철학과를 갔지만 졸업논문은 하이데거를 했다. 하이데거를 너무 좋아해서 아웃사이더가 됐다”라는 농담을 곁들이며 “하이데거의 사상은 항상 와 닿는 게 많다. ‘그냥 숨 쉬고 있는 게 사는 게 아닌,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하고, 나로서 나를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 건 정확하게 하이데거의 생각이다”라고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사상을 언급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피타입, 사진|브랜뉴뮤직


동아닷컴 최현정 기자 gagnrad@dog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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