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산책]도쿄돔의두모습

입력 2008-01-11 09:25:56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이겨도 ‘언론기피’ 병규 졌어도 ‘회견자청’ 승엽 지난해 10월 19일 늦은 밤. 기자는 일본 도쿄돔 1층 어두컴컴한 복도에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기자 40여 명도 삼삼오오 모여 서성였다.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와 주니치의 센트럴리그 챔피언 결정 2차전이 끝난 직후. 숙소로 돌아가는 선수들을 잡고 한두 마디씩 듣기 위해서였다. 이날의 스타는 고맙게도 ‘한국인’ 이병규였다. 그는 홈런 1개를 포함해 2안타 3타점으로 주니치의 2연승을 이끌었다. 경기 후 1시간 남짓 지났을까. 주니치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가운데 이병규가 보였다. 기자들은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이병규는 귀찮다는 듯 성큼성큼 거의 뛰다시피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다급해진 한국 기자들은 같이 뛰어가며 몇 마디라도 물어봤지만, 한국말을 모르는 일본 기자들은 멀어져 가는 이병규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밤. 비슷한 상황이 재연됐다. 요미우리는 이날 치욕의 3연패로 주니치에 우승을 내주며 시즌을 마감했다. 불행하게도 패인은 요미우리 4번타자인 ‘한국인’ 이승엽에게 돌아갔다. 그는 3연전에서 타점 하나 올리지 못했다. 이번 기다림은 길었다. 주니치에 맥없이 지며 시즌을 접게 된 요미우리 하라 다쓰노리 감독의 마지막 미팅이 길어진 건 당연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하라 감독은 이날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2시간 남짓 지났을까. 이승엽이 그 침침한 복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 기다렸지만 한국 기자들은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승엽은 달랐다. 그는 오히려 기자들에게 먼저 다가와 엷은 미소까지 띠며 “여기에서 얘기하면 될까요”라고 말했다. 한국 기자들과의 인터뷰가 끝나자 이번엔 일본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최악의 경기’를 펼친 이승엽은 인터뷰를 두 번 한 뒤에야 경기장을 나섰다. 이승엽과 이병규는 올해도 일본에서 뛴다. 어쩌면 기자는 올해 TV로만 이들의 활약을 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난해 서성였던 그 어두운 복도와 두 스타가 보인 상반된 모습은 자꾸만 떠오를 것 같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