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말은안믿고망원경만믿다니…”

입력 2008-03-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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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불러줘도멋대로샷…벙커빠지고보기자초하고“아~고소해”
필드에서 골퍼가 믿을 사람은 오직 캐디뿐이다. 친구도 동반자도 모두 적으로 돌변하기 때문에 그 순간만큼은 캐디만이 유일한 우군이다. 골퍼와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캐디들이 감동적인 사연, 웃지 못 할 사건, 기억에 남는 일 등을 스포츠동아 독자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유쾌한 수다방을 열었다.<편집자주> 왕 언니 : 여기저기 골프장이 생겨서 예약하기 쉽다더니 그것도 아닌가봐? 얼짱 캐디 : 아니야, 우리 골프장은 작년이랑 달라 내장객이 줄었다고 꽤 신경 쓰던데…. 들잔디 소녀 : 그나저나 이제 곧 시즌이니 우리도 슬슬 전쟁(?) 준비 해야지. 얼짱 캐디: 근데 요즘 골퍼들은 왜 그렇게 캐디 말을 못 믿는지 모르겠어. 어떨 때는 대놓고 무시하더라고. 왕 언니: 그러게. 거리를 불러줘도 자기 맘대로 계산해서 치는 골퍼들이 너무 많아. 얼짱 캐디: 난 얼마 전에 황당한 경험을 했잖아. 내 말은 믿지도 않으면서 왜 그렇게 거리를 물어보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 들잔디 소녀: 다들 비슷하구나. 나도 어제 거리 때문에 고생했거든. 왕 언니 : 무슨 일 있었어? 들잔디 소녀 : 파4 홀이었는데 세컨드 샷 위치가 거리를 계산하기 좀 애매한 지점이었어. 실제 거리는 130야드 정도지만 오르막 상황을 감안하면 한두 클럽은 더 봐야했거든. 그래서 하우스 캐디만의 노하우를 발휘해 “오르막까지 150야드입니다”라고 가르쳐드렸어. 왕 언니: 잘했네. 그럴 땐 캐디의 노하우가 필요하지. 들잔디 소녀 : 근데 한 분이 망원경을 꺼내들더니 잠시 후 “언니 피칭하고 9번 줘” 그러는 거야. 내가 보기엔 100타 정도로 보이는데 본인은 싱글 수준으로 착각하더라고. 그래서 8번 아이언도 하나 더 가지고 냅다 뛰어가서는 상냥한 목소리로 “고객님 150야드는 보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랬더니 간단하게 “됐어” 하더라고. 속으론 결과가 뻔 한데 어쩌겠어. 그런데 중요한건 “언니 난 얼마 보면 될까?”하고 다른 고객이 물어서 “고객님은 140야드 정도 보시면 됩니다”라고 공손하게 말씀드렸더니 옆에 있던 그 분이 다시 망원경을 꺼내더니 “아냐, 120야드만 봐” 하더라고. 얼짱 캐디 : 그래서 어떻게 됐어? 들잔디 소녀 : 안 봐도 비디오 아니겠어. 결국 둘 다 그린 앞 벙커에 빠졌지. 얼짱 캐디 : 고소했겠다. 들잔디 소녀 : 고소하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안타까웠어. 왕 언니 : 다음 홀부턴 좀 편했겠는걸. 들잔디 소녀 : 아니, 그래도 끝까지 내 말은 안 믿고 망원경을 믿던데. 얼짱 캐디 : 그럴 땐 빨리 포기하는 게 상책인 것 같아. 난 얼마 전에 더 황당한 일을 겪었어. 그래도 경력 5년의 나름 베테랑인데 우리 골프장이 신설이라고 나까지 초보취급 하더라고. 왕 언니 : 맞아 그런 경우 있지. 얼짱 캐디 : 파3홀에서 배판에 니어핀까지 붙었는데 계속 돈을 잃던 손님이 모처럼 버디 기회를 잡았어. 그거 넣으면 니어에 버디까지 본전하고도 남을 상황이었거든. 근데 라이가 내리막에 오른쪽 경사까지 있는 힘든 상황이었어. 그래도 속으로 이번엔 꼭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른쪽으로 3컵 정도 보는 게 좋습니다”라고 말했더니 “뭐 3컵? 여기서 3컵이나 보라고”하더니 동반자한테 “OO야 내가 본거 어때?”하면서 내 말을 안 믿는 거야. 어찌나 마음이 상하던지. 들잔디소녀 : 그래서 어떻게 됐어? 얼짱캐디 : 내리막이 많다고 했는데 결국 3퍼트해서 보기했어. 어드레스 들어가기 전에도 분명히 “내리막 많습니다. 살살 치세요”라고 했는데 듣지도 않더니 결국 보기해서 본전도 못 건졌어. 더 웃긴 건 동반자들이 모두 ‘아깝다’하면서 안타까운 척 하는데 설마 동반자들이 아까워했겠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겠지. 왕언니 : 그러게 고객들이 캐디를 믿고 플레이하면서 즐겁게 게임하면 우리도 힘이 나고 보람 있는데 왜 그렇게 무시하는지 모르겠어. 김현수 골프장 경기과에서 오래 근무했고 현재 서비스 교육 및 매니지먼트 회사 EMG에서 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캐디들의 왕 언니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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