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장불붙이고“시청률아타올라라”

입력 2008-05-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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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PD로 사는 한 시청률은 영원한 굴레다. 정답도, 공식도 없는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PD들은 밤낮없이 현장을 뛰고, 편집실에서 밤을 새고, 작가와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벌인다. 작품에 윤을 내주는 것이 바로 시청률이고 오랫동안 공들인 노력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것 역시 시청률이다. 매일 아침, 시청률 표를 받아들고 마음 졸이는 드라마 PD들이 시청률에 대처하는 서로 다른 자세를 살펴보자.》 ‘고뇌형’ 이태곤 PD “비나이다 비나이다” ‘자유형’ 김진민 PD “난 대박 PD 아니야” ‘초월형’ 이병훈 PD “시청률 너는 너 나는 나” ○고뇌형-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이태곤 PD 최진실, 정준호라는 톱스타를 내세워 기대 속에 출발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 첫 회 시청률 9.8를 기록하자 이태곤 PD는 충격에 빠졌다.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1∼2포인트 가량 상승했지만 워낙 낮은 기록으로 출발한 까닭에 기대하는 절대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 PD의 시름도 커졌다. 경기도 평택의 오픈세트에서 주로 머물던 이 PD가 세트 한 켠 잔디밭에 불을 붙이면서 “이 불처럼 시청률이 활활 타오르라”는 주문을 걸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를 지켜보던 주변 스태프들은 ‘오죽했으면’이라면서 이 PD를 위로했다. 이 PD는 전작인 일일극 ‘사랑은 아무도 못 말려’를 연출할 때 드라마가 10미만의 저조한 시청률을 나타내자, 자신의 집에서 가위를 들고 스스로 머리카락을 잘랐다. 시청률 고민에 빠져 잠 못 들던 밤, 화장실 거울에 비추어진 모습에 화가 나 그만 머리카락을 자르고 만 것이다.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20대의 시청률로 종영하며 작품성과 흥행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 PD는“시청률에 있어서는 여전히 배고프다”고 고백했다. ○자유분방형 - ‘달콤한 인생’의 김진민 PD “전 시청률 대박 PD가 아니잖아요.” 3일 방송을 시작한 MBC 주말극 ‘달콤한 인생’의 김진민 PD는 드라마 연출자로서는 꺼내기 어려운 말을 거침없이 하는 스타일이다. 신작의 방영을 앞두고 예상 수치를 묻자 “시청률에서 그동안 대박을 보지 않았으니 인기를 장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시청률에 울고 웃는 드라마 PD가 가장 조심스러워 해야 할 답변에서 ‘쿨’한 태도를 보인 그는 “작품이 좋다면 시청률은 따라올 것”이라며 “센세이션을 일으키지 않을까”라고 자신했다. ○초월형- ‘이산’ 이병훈 ‘왕과 나’ 김재형 PD ‘사극의 명장’ 이병훈, 김재형 PD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사극이 전문인 두 연출자는 시청률보다 역사의 재조명과 잊었던 실존 인물을 다시 한 번 깊숙이 들여다보는데 집중한다. 4월 종영한 SBS 월화극 ‘왕과 나’를 연출했던 김재형 PD는 방영 초기 “더는 시청률에 관심이 없다”고 단언했다. 연출작 ‘용의 눈물’, ‘여인 천하’ 등으로 50에 이르는 시청률 기록을 보유한 김 PD는 “욕심나는 시청률 기록은 모두 이뤄봤다”며 “이제는 드라마가 가려는 방향을 시청자에게 올바르게 전달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MBC 월화극 ‘이산’의 이병훈 PD도 비슷한 생각이다. 역시 ‘허준’, ‘대장금’ 등 히트작으로 50를 넘는 대기록을 보유한 이 PD는 “잊혀진 역사적 인물에게 다시 숨을 불어넣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시청률 경쟁보다는 이야기에 충실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시청률 표보다 시청률 기사가 더 두렵다’- KBS 예능 PD들의 외침 시청률 표보다 시청률 관련 기사를 더 경계하는 PD들도 많다. 시청률 기사가 자칫 프로그램 간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KBS의 인기 예능프로그램을 연출하는 한 PD는 “시청률 기사가 많이 나오면서 시청률이 조금만 하락해도 큰일이 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시청률에서 빚어진 제작 경쟁이 담당 PD의 ‘징계’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2005년 MBC가 인기리에 방영하던 드라마 연출자는 종영 후 방송사로부터 7일간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녹화 완성본 테이프를 방영 시간에 임박해 전달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그의 징계를 두고 방송가 안팎에서는 동정여론이 일었다. 완성도를 높이고 싶은 게 연출자 누구나의 마음이라는 공감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징계 처분을 받은 뒤 이 연출자는 사내 게시판을 통해 “같은 시간대에 2∼3편의 드라마가 중복 편성돼 치열한 경쟁을 하는 열악한 제작 여건 속에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노동을 많은 제작진이 할 수 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작가들도 시청률 공포 “오를때도 피 마른다” 시청률 고민은 비단 PD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본을 쓰고 이야기를 이끄는 작가들도 고민도 깊기는 마찬가지다. ‘젊은이의 양지’, ‘첫사랑’, ‘회전목마’ 등 따뜻한 드라마를 집필하다가 2006년 간암으로 세상을 뜬 조소혜 작가는 생전 “아픈 것보다 매일 아침 받았던 시청률표가 나를 더 무섭게 했다”고 털어놓았다. 작가가 피부로 느끼는 시청률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올인’,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를 쓴 최완규 작가는 ‘주몽’ 집필 당시 “오르는 시청률만큼이나 피가 마른다”는 고백을 했다. 시청률이 높으면 높은대로 유지해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로서 놓칠 수 없는 작품성과 흥행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사극 작가로서 속이 탄다는 의미였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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