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박경리“버리고갈것만남아참홀가분하다”

입력 2008-05-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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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별, 검붉은 토지 위에 고이 잠들다. 한국 문단의 거목 박경리 선생이 5일 오후 3시경 폐암으로 타계했다. 향년 82세. 선생은 지난해 7월 폐암선고를 받은 이후 고령을 이유로 항암치료를 거부한 채 투병해왔으며, 지난달 4일 뇌졸중 증세로 쓰러져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이날 숨을 거뒀다. 1926년 10월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선생은 1955년 현대문학에 실린 단편 ‘계산’이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등단한 이래 ‘김약국의 딸들’, ‘파시’, ‘시장과 전장’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선생의 대표작이자 한국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토지’의 첫 장이 열린 것은 1969년. 현대문학에 1부가 실린 것을 시작으로 문학사상, 월간경향, 문화일보 등 매체를 옮기며 연재를 계속한 끝에 1994년 8월, 마침내 원고지 4만장 분량의 5부작 16권의 대하소설 ‘토지’가 대장정의 마침표를 완성했다. 첫 연재 이후 무려 25년만의 일이었다. 25년간 쓴 ‘토지’ 남기고…향년 82세 폐암 타계 평소 ‘이곳에 묻히고 싶다’던 통영 농원에 영면 지인들 “노벨상 타실 때까지 사셔야…” 말 흐려 ‘토지’를 탈고한 이후에도 선생은 잇단 작품 활동으로 문학에 대한 식지 않는 애정을 드러냈다. 비록 미완으로 남았으나 2003년 현대문학에 장편 ‘나비야 청산가자’를 연재했으며 최근에는 ‘까치 설’, ‘어머니’, ‘옛날의 그 집’ 등 신작시를 발표해 시인으로서의 역량도 과시했다. 선생은 1980년부터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에 위치한 토지문학공원에 정착했으며, 98년부터 토지문화재단의 이사장을 맡아왔다. 토지문학공원은 지난 한 해 동안 5만 5000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한 한국문학의 성지. 선생이 흥업면 매지리의 산기슭에 토지문화관을 건립해 옮겨가면서 1999년 원주시가 인수해 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선생은 지상 4층 규모의 토지문화관을 세우고 후배 문학인들에게 창작 및 집필 공간을 제공해 왔다. 한편 선생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문단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조문과 애도의 뜻이 밀려들고 있다. 정해룡 통영예총 회장은 “유치환, 김춘수에 이어 통영이 낳은 한국 문학계의 마지막 산맥이 타계하셨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실 때까지 사실 것이라 믿었는데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선생의 고향인 통영시는 진의장 시장을 명예위원장, 정 예총회장을 위원장으로 문화, 교육, 언론, 시민사회단체 회원 50여 명이 참여한 ‘고(故) 박경리 선생 추모위원회’를 구성해 추모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유족은 외동딸인 김영주(62) 토지문화관장과 사위 김지하(67) 시인.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장지는 선생이 생전 가족과 함께 방문해 “이곳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던 통영시 산양읍 양지농원이다. 빈소 연락처 02-3010-2631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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