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스미는깊은울림,삼색아리아에어울림…‘리골레토’

입력 2008-05-19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주세페 베르디의 걸작 오페라 리골레토를 보고 왔다. 개관 1주년을 맞아 16일 고양아람누리에서 공연된 이번 리골레토는 한국 오페라 60년 사상 최초로 오페라의 ‘종갓집’ 이태리로부터 초청받았다는 서울시오페라단의 바로 그 ‘리골레토’였다. 리골레토는 프랑스의 낭만주의 작가 빅토르 위고의 희곡 ‘환락의 왕’을 읽은 베르디가 ‘홀랑’ 반해 오페라로 만든 작품이다. 그러나 방탕한 왕의 생활을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로 공연금지처분을 받았고 이에 등장인물의 이름과 직업, 배경을 싹 바꾼 후에야 비로소 상연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제목도 으스스한 ‘저주’에서 극중 인물이름인 ‘리골레토’로 ‘순화’했다. 이 작품은 플레이보이 기질이 농후한, 그래서 예쁜 여자만 봤다 하면 유혹에 나서는 만토바 공작(테너)과 그의 광대인 꼽추 리골레토(바리톤), 그리고 천하절색이자 순결의 보증수표인, 그래서 공작의 꾐에 넘어가 불운한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아버지의 품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질다(소프라노)의 3인 3박자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여자를 유혹할 때면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만토바의 ‘작업송’은 그 유명한 ‘여자의 마음’이다. 베르디는 이 곡이 새어나갈 경우 ‘24시간 내에 온 거리에 퍼질 것’을 우려하여 초연 3일 전까지 극비에 붙였다는 일화가 있다. 3막의 끝부분에 나오는 선술집의 4중창도 잘 알려져 있다. 오페라 대본에 불만을 품은 나머지 소송을 걸었던(패소했다) 빅토르 위고조차 이 부분을 듣고 나서는 “내 희곡에서도 이처럼 네 명이 동시에 말을 할 수 있다면”하며 감탄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 역을 ‘느끼하게’ 소화해낸 나승서, 순진무구하다 못해 답답하기조차 한 질다 역을 맡은 강혜정도 좋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날 공연의 주역은 리골레토 역의 고성현이었다. 바리톤 고성현은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저주, 딸에 대한 애정과 슬픔을 무대가 터져나갈 듯한 성량으로 완벽하게 되살려냈다. 자객 스파라푸칠레에게 만토바 공작의 살해를 청부한 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다. 그는 칼로 사람을 죽이고, 나는 혀끝으로 사람을 찌르지”라고 리골레토가 읊조릴 때는 무대에 귀기가 서릴 정도였다. 돌아오는 밤길에는 리골레토가 죽은 딸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나는 저주를 받았다!”며 절규하던 마지막 장면이 내내 마음에 남았다. 그는 혀끝으로 남을 찌르고, 결국 혀끝으로 찔림을 당한 비운의 사람이었다. 꽤 생뚱맞지만, 사람은 착하게 살고 볼 일이라는 감상이 남았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 리골레토 대표명반 2개 [1] 티토 곱비(리골레토)|주세페 디 스테파노(만토바 공작)|마리아 칼라스(질다)|툴리오 세라핀(지휘)|밀라노 스칼라극장 관현악단, 합창단|1955년|EMI|모노 ‘리골레토의 재림’으로까지 불린 티토 곱비와 청량한 음색의 디 스테파노, 그리고 두 말이 필요 없는 ‘소프라노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가 펼친 최강의 리골레토다. 모노녹음이 조금도 섭섭하지 않은 명연. 아직까지도, 아니 앞으로도 이 판을 능가할 리골레토가 존재할 수 있을지 의심이 가는 전설적인 음반이다. 후배들에게는 귀감을 넘어 좌절을 안겨준다. [2] 로버트 메릴(리골레토)|알프레드 크라우스(만토바 공작)|안나 모포(질다)|게오르그 솔티(지휘)|이탈리아 RCA관현악단, 합창단|1964년|RCA|스테레오 성악진도 완벽하지만 무엇보다 게오르그 솔티의 지휘가 빛난다. 시종일관 ‘힘’으로 죽죽 밀어붙이는 솔티의 개성이 드라마틱한 베르디의 오페라와 딱 맞아떨어지고 있다. 메릴의 리골레토, 더 없이 청순한 안나 모포의 질다도 훌륭하다. 이 밖에 셰릴 밀른즈, 조안 서덜랜드,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등장하는 리차드 보닝(런던심포니) 판도 추천하고 싶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