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꾼’들만모였다…충무로주름잡는연기9단,내공의뿌리는연극

입력 2008-06-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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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연극 무대의 수입 때문에 아르바이트 삼아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들. 하지만 그들은 이제 한국영화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극단 선배들에게 야단맞을까 연습 없는 날 몰래 출연한 영화의 단역. 하지만 주머니 속 송곳이라고 동작 하나, 표정 하나가 달랐다. 너무 연기를 잘해 배역이 점점 커졌고 이제는 많은 연극 출신 배우들이 스크린을 빛내고 있다. 이런 스크린 스타를 배출한 곳이 소극장 학전과 극단 목화다. 대학로 학전 극장에서 관객들의 갈채를 받던 뮤지컬 배우들 중 상당수가 지금 충무로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또한 한국 연극계의 거목 오태석이 이끌던 극단 목화 출신 배우들 역시 영화에서 연기파 배우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학전과 목화 출신 배우들의 공통점은 모두 끝내주게 연기 잘하는 스타라는점. 연극 무대에서 수백 수천 번 무대에 올라 관객 앞에서 흘린 땀은 이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공으로 스크린에서 빛나고 있다. ○ 설경구 김윤석 조승우 황정민...2001년 학전의 ‘드림팀’ 1991년 개관한 소극장 학전은 스스로 극단을 만들어 뮤지컬을 공연하기 시작한다. 김민기 대표는 독일 뮤지컬 ‘라인 1’을 번역하고 각색해 ‘지하철 1호선’을 제작, 1994년 처음 막을 올렸다.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10년 이상 장기 공연됐고 수많은 뮤지컬 스타를 낳았다. 특히 2001년 학전에서 ‘지하철 1호선’을 공연한 출연진의 면면을 지금 살펴보면 깜짝 놀랄 정도다. 설경구, 김윤석, 조승우, 황정민에 장현성까지. 지금 이들의 편당 영화 출연료만 합쳐도 1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거물들이 됐다. 1994년부터 2000년까지 공연된 ‘지하철 1호선’ 출연진 중 베스트만 모였다고 평가받는 2001년 팀은 원작의 나라 독일 베를린으로 날아가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좁은 무대에 모인 만큼 후끈한 열정이 그대로 관객에게 전해지며 국내는 물론 베를린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었다. 황정민은 1994년 이 뮤지컬로 데뷔해다. 그는 같은 해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출연하며 영화로 본격 진출했다. 조승우는 1999년 ‘춘향전’으로 영화에 데뷔한 촉망받는 배우였다. 설경구는 한 해 전 ‘박하사탕’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유망주였다. 다른 배우들보다 더 오래 연극무대에 머물다 최근 진가를 발휘하는 김윤석은 사실 당시 가장 유명한 대학로 스타였다. 조승우가 “굉장히 유명한 선배 배우여서 함께 공연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고 할 정도. 김윤석은 “극단 학전 출신이라기보다는 소극장 학전에 모여 함께 공연했던 절친한 동료들이다. 다들 영화에서 맹활약하고 있어 기분이 참 좋다”고 당시를 추억했다. 매회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2001년 학전 멤버. 7년여가 지난 지금. 그들은 무대만 스크린으로 옮겼을 뿐 여전히 최고의 공연을 관객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 그들은 눈빛부터 다르다. 연기의 달인 목화 목화는 연극계 최고 실력파들이 모여있다는 자부심이 괜한 말로 들리지 않는 전통 있는 극단이다. 배우들에게는 목화 단원이라는 것 자체가 커다란 자부심이다. 대학로 관계자들을 그래서 “목화 애들은 눈빛 하나 대사 한 마디가 다르다”는 말을 할 정도다. 연극판에서도 알아주는 이들의 내공은 최근 영화에서도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대표적인 목화 출신 스타는 손병호, 정은표, 유해진, 성지루, 박희순, 임원희 등이다. 모두 연기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배우들. 하지만 그들이 지금처럼 실감나고 살아있는 연기를 하기까지는 힘겨운 수련과정이 있었다. 목화는 ‘열 명에 아홉은 도망간다’는 혹독하기로 유명한 연기 트레이닝이 유명하다. 열정이 없다면 결코 견딜 수 없는 수업과정을 거친 그들은 무대에서 강한 카리스마로 객석을 압도한다. 또한 화려함은 덜해도 꾸준한 묵직함으로 조금씩 빛을 본 공통점도 갖고 있다. ‘파이란’, ‘야수’, ‘바르게 살자’ 등에서 깊은 음성, 냉철한 눈빛을 발산하며 쉽지 않은 악역을 연기한 손병호. 하지만 극단의 막내 시절, 목화를 이끌었던 서울예대 오태석 교수에게 이름 한 번 불리기까지 1년이 넘게 걸렸다. ‘헨젤과 그레텔’, ‘박수칠 때 떠나라’ 등에서 활약한 장영남 역시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뚝뚝 흐르는 아픔을 경험했다. 연극 개막을 몇 주 앞두고 오태석 교수에게 연기 못한다고 야단맞으며 잘린 기억이다. 실기가 강한 서울예대에서 연기 잘 한다는 학생들이 추천받아 목화에 들어갔고, 거기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야단맞으며 다시 배운 연기니 만큼 그 깊이가 심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목화 출신 스타들은 혹독하게 자신들을 길러준 오태석 교수를 인생의 스승, 연기의 아버지로 삼고 있다. 코믹한 연기로 인기를 끌고 있는 유해진은 목화의 스타배우였고, 성지루는 굵직한 왕 역할을 많이 맡았다. ‘세븐데이즈’의 박희순 역시 목화의 주연배우로 수영으로 치면 박태환 이상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활약했다. 개성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목화 출신들도 많은 연극배우들이 영화로 진출하며 조금씩 활동무대를 넓혔다. 사실 목화 출신 연기자 중 얼굴이 빼어나게 잘생겼거나 예쁜 배우들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에서도 오랜 시간 조연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그 진실한 땀은 결국 성과로 돌아와 유해진과 성지루, 박희순은 주연배우 활약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됐다. 유해진은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등에서 악역과 감초 역할을 맡더니 ‘왕의 남자’, ‘혈의 누’ 등에서 자신의 진가를 들어냈다. 박희순 또한 악역을 계속하다 ‘세븐데이즈’로 자신의 능력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목화 출신들의 공통점은 화려하게 빛나지 않지만 꾸준하고 묵묵히 자신이 맡은 역할을 확실하고 표현해주는 능력이다. 작은 역할이라도 완벽하게 그려내며 수많은 히트작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피눈물 흘려가며 갈고 닦은 그들의 깊이는 이제 한국영화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금이 됐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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