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속‘진짜식객’김수진음식감독

입력 2008-07-26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똑똑 또도독…’ ‘치익∼’, 보글보글…. 하루를 정리하는 늦은 시간. 바쁜 도마 소리와 야단스러운 냄비 소리가 어우러지는 곳이 있다. 바로 허영만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SBS 음식 드라마 ‘식객’이다. 꿩, 노루, 멧돼지로 조리한 나평전골, 탕 속에 들어가 노란 꽃을 피운 호박꽃탕, 아삭아삭 소리를 내는 듯한 김치 샐러드, 보글보글 거품을 토하는 소박한 청국장까지. 맛의 달인들이 펼치는 화려한 경연 뒤에는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은 음식을 만들어내는 진짜 ‘식객’ 김수진 음식감독이 있다.》 촬영 전날 꼬박 장보고 해당신에 맞게 식재료 일일이 체크 “누가 여기 검정콩묵 샐러드에 검은 참깨 드레싱 얼른 뿌려줘. 준비한 나물 어딨니? 얼른 데치고 이 그릇에 담자. 배우가 태극 두부선 하나를 망가뜨렸다고? 보정해주고. 신선로는 카메라 빠질 때 다시 데워줘. 김이 날 수 있게.” 7월 21일 낮 운암정 주방신이 한창 진행 중인 ‘식객’ 경기도 파주 세트장. 촬영 시작은 오후 2시였지만 김수진 감독과 그가 원장으로 있는 푸드앤컬쳐스 직원들, 특별 초빙된 호텔 쉐프까지 포함한 10명의 푸드팀은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다. 전날 하루 꼬박 장을 보고 반 조리 상태로 만들어온 식재료를 각 신과 상황에 맞춰 준비하기도 빡빡한 시간. 오늘은 총 15가지의 음식이 촬영에 필요한 날. 평소보다 2배 정도 많아진 호텔 쉐프까지 특별 지원팀으로 동원했다. 오후 2시가 지나자 그녀의 숨가쁜 지시에 푸드팀의 일사분란한 팀워크가 발휘됐다. “고명을 핀셋으로 집어서, 가지를 벌려요. 오케이. 잘한다. 틈 몇 개에는 고명을 미리 넣어두고 뒤에 두 개 정도만 잘 넣어요.” 음식 만지는 배우 곁에서 세세한 움직임 하나까지 직접지도 시시각각 변하는 카메라 각도에 혹시라도 잡힐까 이리저리 몸을 피해 다니는 현장 스태프들과 달리 김수진 원장은 음식을 만지는 배우의 바로 근처에서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요령을 가르쳤다. 카메라의 동선을 미리 파악한 그녀는 촬영 개시를 알리는 연출자의 “슛-” 신호 이후에도 소리나지 않는 슬리퍼를 신고 세트장을 오가며 다음 신을 준비했다. 바쁘게 움직이던 촬영이 잠시 멈췄다. 10여개 음식 그릇들과 테이블 크로스의 색상이 눈에 띄게 맞지 않은 것. 잠깐 생각에 잠긴 김 씨는 세트장 밖에 있던 한옥 문짝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모니터 화면을 체크한 한철수 감독의 얼굴에 만족의 미소가 흘렀다. 김 씨는 “평소 그릇까지 완벽하게 세팅해 오는데 오늘은 음식에 신경을 쓰다가 착오로 그릇의 통일성을 생각지 못했다. 그릇을 올렸을 때 높낮이가 다른 한옥 문짝을 올리니 훨씬 멋스럽고 화면에 조화도 생겼다”고 한숨을 돌렸다. ‘왕의 남자’서 궁중음식 연출…‘쌍화점’‘미인도’서도 음식감독 드라마에서 다소 낯선, 음식감독이라는 직함을 단 그는 20년 넘게 한식 요리연구가로 활동한 베테랑 ‘식객’이다. 푸드 스타일리스트를 양성하는 푸드앤컬쳐스의 원장을 맡고 있는 김 씨는 2005년 영화 ‘왕의 남자’에서 궁중음식을 연출한 것을 시작으로 영화 ‘식객’에 이어 드라마 ‘식객’의 음식감독까지 맡고 있다. 그녀는 이외에도 조인성 주연 영화 ‘쌍화점’과 김민선 주연 영화 ‘미인도’ 촬영에서도 역시 음식감독을 맡고 있다. “돈되는 직업 아니지만 새영역 개척·요리 종사자에 희망 자부심” 슬그머니 이렇게 바쁜 그녀의 수입이 궁금했다. “알고 보면 돈이 되는 직업은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녀는 “국내에 없던 음식감독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개척했다는 개인적인 긍지가 크고, 요리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나 주부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웃었다. 그녀는 “맛을 많이 알아야 하고, 기억해야 하고, 시각적인 디자인 능력, 여기에 언제 바뀔지 모르는 현장 순발력이 필요해 만만치는 않은 직업”이라고 덧붙였다. 이유나 기자 lyn@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