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졌지만한국양궁은지지않았다”

입력 2008-08-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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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은메달이었다. 2004아테네올림픽 양궁 여자단체전 결승. 박성현(25·전북도청)은 마지막 1발을 앞두고 있었다. 금 앞에 눈이 먼 장주안주안은 춤을 추며 박성현의 시야를 흐트러트렸다. 10점이면 한국의 금, 8점이면 중국의 금이었다. ‘얼음공주’는 차가운 표정으로 활시위를 당겼다. 골드 텐. 중국은 은메달을 따고도 비난을 받았다. 4년 뒤 이번에는 입장이 바뀌었다. 마지막 발은 장주안주안의 몫. 8점을 쏘면 슛오프였다. 하지만 박성현은 마지막 발을 10점으로 마친 뒤 장주안주안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문형철 감독의 품에 안겼다. 1점차 패배. 박성현은 4년 전 자신에게 비신사적인 행위를 했던 그 선수에게 박수를 보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박성현의 이름값은 크지 않았다. 전북도청 서오석 감독은 그런 박성현의 신체조건을 눈여겨봤다. 2000년 11월 박성현은 고등학교 3학년의 신분으로 전북도청팀의 지옥훈련에 참가했다.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이 이어졌다. 오래달리기로 체력을 키웠다. 서 감독은 훈련 도중 일체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았다. 연습 때도 실전처럼 긴장해야 실전에서도 떨리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최후 한발의 ‘냉정’은 이때 만들어졌다. 그렇게 얼음공주가 됐다. 하루 최대 1000여발의 훈련량은 ‘열정’으로 이겨냈다. 상의 칼라를 만지는 동작부터, 현이 모자에 걸리지 않도록 만지는 버릇까지. 박성현식 루틴도 이 때 다듬어졌다. 5개월이 지났다. 근력이 붙었다. 66인치 활을 남자선수들이 쓰는 70인치로 바꿨다. 속사포 같은 화살은 엑스 텐으로 향했다. 그해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고, 이후 세계여자양궁의 정상을 지켰다. 여왕에게도 올림픽에 대한 부담은 컸다. 소속팀 강만수 코치는 “(박)성현이의 체중이 줄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했다. 신앙심이 깊은 박성현은 기도로 마음을 다잡았다. 얼음공주의 심장은 양궁장을 나서는 순간 뜨거워진다. 박성현은 2004년부터 전북 군산의 노인요양원에 생필품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TV 5대를 전달했다. 선행도 활 쏘는 스타일처럼 조용조용. 기부 이야기를 꺼내면 손사래를 친다. 할머니들은 박성현이 내놓은 TV로 손녀딸뻘의 천사를 응원했고, 은메달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패했지만 신궁의 자존심을 살아있었다. 박성현은 “나는 비록 졌지만 한궁 양궁은 무너진 것이 아니다”라며 기자회견장을 나섰다. 베이징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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