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야구못할까암도숨겼지”

입력 2008-09-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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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일하는가, 일하기 위해 사는가? 보통사람의 상식으로 직업은 먹고 살기 위한 삶의 방편일 따름이다. 그러나 1000승 감독인 SK 김성근 감독은 ‘야구를 하기 위해 살아온 사람. 야구가 곧 삶의 증거’라고 해야 옳다. “야구 감독이 삶의 목적이자 의무이자 사명감”이라고 선언한 그이기에 그렇다. 감독 통산 1000승을 달성한 다음날인 4일 김 감독은 문학구장에서 열린 히어로즈전에 앞서 10여년 전 쌍방울 사령탑 재임 때 신장암 수술을 받은 비밀을 처음으로 고백했다. 쌍방울 시절부터 김 감독을 보좌해온 박철호 홍보팀장 조차 “처음 들었다”고 할 정도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당시 모기업의 경영난으로 핵심 선수들을 팔아치운 데다 김 감독의 야구에만 몰입하는 결벽증적 생활패턴 탓에 신장이 망가졌다. 그러나 김 감독은 “이러다 혼자 쓰러져도 야구인으로서 부끄럽지 않다는 생각이었다”란 말로 초기 암 진단부터 수술, 재활을 주위에 일체 알리지 않고 홀로 견디기로 한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수술 다음날 혼자 걸어나와 움직인 탓에 바지가 핏물로 물들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저 주저앉으면 야구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잠시도 몸을 가만두지 않았다. 김 감독은 “야구가 없었으면 벌써 쓰러졌을 거야”란 말로 야구를 향한 열정 덕분에 암을 이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야구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더 몸을 혹사시켰지. '내가 목숨을 걸고 때릴테니 너희들도 죽을 각오로 받아라'고 혼잣말을 하며 매일 수천개의 노크를 쳤어. 그런데 의지가 통했는지 몸은 건강을 회복했으니 결국 야구가 나를 살린 셈"이라고 말을 이어갔다. 그 때 받은 수술의 여파로 신장 하나를 잃어 이제 하나 남은 신장에 무리가 갈 텐데도 김 감독은 경기 중 화장실에 안 가는 나름의 징크스를 지금도 지키고 있다. 그러면서 “최근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야구만 잘 하면 된다’고 의사가 얘기 하더라”며 오히려 야구 현장에서 건강을 되찾았다고 언급했다. 심지어 김 감독은 “지금 내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하는 것도 내 몸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몸이 건강해야 정신이 또렷하고, 그래야 야구를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파서, 힘들어서 야구를 피한 적은 없다”고 말하는 그이기에 자식 같은 선수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엄격하다. 포수 박경완은 손가락뼈에 금이 간 상태인데도 1군 엔트리에 남아있다. 이광길 코치는 현역 시절 발가락뼈가 부러졌는데도 경기 출장을 강행했다. 그러다 저절로 뼈가 붙었다고 한다. 이런 육체 한계의 도전에 대해 김 감독은 “정신이 육체에 앞선다. 프로에게 승리는 자랑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완벽해지기 위한 반복연습은 프로페셔널의 당연한 자세다. 자발적이어야 하기에 결코 노동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실제 그의 ‘아이’들은 4일 히어로즈전에서도 5-1 역전승을 일궈내는 근성과 집중력을 발휘했다. 김 감독은 “SK의 야구를 보여줬다”라고 흡족함을 나타냈다. 최근 일체 사인을 내지 않고, 연습조차 보지 않을 정도로 SK의 야구는 완성 궤도에 접어들었다. 인텔의 전 CEO 앤디 그로브는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고 설파했다. 이를 초월해 김 감독은 ‘편집광이어서 살아남은’ 사람이다. 문학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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