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플라자]이정재이보다망가질순없다

입력 2008-11-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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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클어진 머리에 세수도 안한 얼굴, 늘어지게 하품하며 오늘은 어디서 술이랑 밥을 얻어먹을까 기웃기웃. 결국 이날도 패싸움 나가 쌍코피를 줄줄 흘리며 주먹질을 해댄다. 과연 누구일까? 13년 전 ‘모래시계’의 고독한 경호원 백재희로 여인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그 남자. 깔끔하고 반듯한 이미지로 멜로영화의 대표스타가 된 이정재는 12월 4일 개봉되는 ‘1724 기방난동사건’(감독 여균동·제작 싸이더스FNH)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1994년 ‘젊은 남자’로 데뷔한 이래 그가 이렇게 망가진 적은 없었다. ‘이재수의 난’ ‘흑수선’ ‘태풍’ 같은 대형영화, ‘시월애’ ‘선물’ ‘순애보’의 다정한 멜로가 지금까지 이정재가 걸어온 길이었다. 코믹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범수가 스타덤에 오른 2003년 ‘오 브라더스’에서 이정재는 첫 코믹 연기로 300만 관객을 이끈 저력을 보였다. 하지만 그 영화에서도 망가지는 건 이범수의 몫이었다. 이정재는 데뷔작 ‘젊은 남자’로 각종 신인상을 휩쓸었다. 1999년 ‘태양은 없다’로 청룡주연상을 받아 장동건, 정우성 등 동년배 스타들 중 가장 먼저 연기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제 나이가 30대 중반으로 접어들어 폼 나는 영화만 골라 해도 괜찮을 필모그래프를 쌓아 놨다. 하지만 이정재는 지금 과감히 ‘기방난동사건’을 택했다. 이정재는 환하게 웃으며 어느 때보다도 개봉을 앞둔 영화가 궁금해 죽겠다고 했다. “첫 경험이 많은 영화에요.” 그의 작품을 하나하나 세어보니 주연을 맡은 16번째 영화인데 새로울 게 뭐가 있었을까? “CG(컴퓨터그래픽)가 이렇게 많이 들어간 영화는 처음이에요. 그리고 과장된 몸짓과 대사까지, CG를 위해 큰 파란색 천을 배경에 놓고 연기한 것도 사실 처음이다. 현장에 항상 CG 책임자가 머물면서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염두에 두고 액션 장면을 촬영했어요. 배우 입장에선 매우 힘든 과정인데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바로 확인이 안 되니 더 궁금하죠.” ‘기방난동사건’은 조선시대 마포 저자거리에서 시작되는 영화다. 한양 최고의 기방 필동 명월향으로 스카우트된 슈퍼스타 기녀 설지(김옥빈)는 마포의 주막 명월향에 잘못 도착해 국밥을 나르다 한량 천둥(이정재)을 만난다. 다시 필동으로 되돌아간 설지, 그리고 사랑에 빠진 천둥은 불의에 맞서 싸움을 시작한다. 설정부터 독특하다. “이게 코믹으로 시작해서 강한 액션과 멜로로 진행되요. 그리고 작은 실수가 큰 사건을 몰고 오면서 처절한 복수극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다시 마무리는 코믹이죠(웃음). 절묘합니다” 여균동 감독이 절치부심 오랜 준비 끝에 선보인 영화인만큼 기대가 높지만 주인공 천둥은 너무 많이 망가지는 역할이다. 변화나 변신에 대해 묻자, 이정재는 망설임 없이 “변신이나 변화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요. 배우는 항상 시나리오를 기다리는 입장이잖아요. 좋은 시나리오 만나기는 좋은 사랑 만나는 것 이상 어려운 것 같아요. 읽자마자 독특함에 푹 빠졌습니다.” 이정재는 연기에 있어 완벽주의자로 유명하다. ‘태풍’에서는 영화 초반부에 딱 3분 등장하는 해변 럭비신을 위해 몇 달간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어 곽경택 감독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기방난동사건’에는 액션 장면이 많다. “준비요? 사실 워낙 막싸움이라 오히려 준비를 하면 안돼요. 하하하, 무술감독 도장에서 미리 동작을 맞춰보기는 했지만 ‘태풍’처럼 절도있는 무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정말 막 싸움이었습니다.” ‘기방난동사건’에서 천둥은 싸움 하나는 한양 최고라고 자부한다. 패거리를 이끌고 이소룡 흉내내며 까불기도 하고, 박치기를 하는 상대에 주먹으로 맞서다 아픈 손을 부여잡고 펄쩍 펄쩍 뛰어다닌다. 정말 이정재의 모습에서 쉽게 상상되지 않는 코믹이다. “과장된 연기를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 영화는 과장을 넘어 만화적인 영화죠. 예민한 관객이시면 몇 장면에서는 제가 쑥스러워하는 걸 눈치 채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워낙 재미있는 현장이라 최선을 다했지만 극복 못 한 부분도 있죠. 사실 그거 눈치 채시면 안 되는데….” 이제는 스타보다 베테랑이란 말이 어울리기 시작하는 이 배우는 겸손하게 말하며 웃었다. 이경호 기자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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