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듯닮은두남자의‘카타르동거’

입력 2008-11-14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기성용(19·서울)과 정성훈(29·부산). 무려 열살 터울인 두 선수가 동거를 시작했다. “평소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없던 선수들끼리 이번 기회에 친해지라”는 코칭스태프의 지시에 전훈지인 카타르에서 룸메이트가 됐다. 기성용은 19세에 태극마크를 달고 주전 자리를 꿰찰 정도로 이른 나이에 두각을 보이고 있는 반면 정성훈은 오랜 무명 시절을 거쳐 지난달에야 처음 대표팀에 발탁된 늦깎이. 선수생활만 보면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두 선수지만 지금의 모습이 있기까지 뒤에서 말없이 응원해 준 존재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무뚝뚝한 아버지 사랑(기성용) “(정)성훈이 형은 아무 심부름도 안 시켜요. 옛날처럼 군기잡고 그런 거 요즘 없어요. 형은 방에서 형수님과 매일 통화하거든요. 근데 저는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하나도 안 부러워요.” 기성용이 너스레를 떤다. 둘이 이처럼 빨리 친해진 데는 힘겨웠던 시절 경험담을 들려 준 정성훈의 조언이 큰 역할을 했다. 기성용은 “가끔 (정)성훈이 형 얘기를 들으면서 정말 힘든 시절을 겪으셨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선수생활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성용이 누구보다 기댈 수 있는 건 바로 아버지 기영옥(51) 씨다. 축구인 출신인 아버지는 기성용이 중학교 1학년 때 호주로 유학을 보내 5년 이상 현지학교에서 영어와 축구를 배우게끔 결단을 내릴 정도로 아들 사랑이 각별하다. 하지만 좀처럼 속은 내비치지 않는 아버지. 특히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는 더 그렇다. 기성용이 카타르에 오기 전 공항에서 한 차례, 카타르와 평가전 전날 한 차례 통화한 게 전부다. 그나마 통화 때마다 “네가 만일 뛴다면 최선을 다하라”는 말로 언제나 주전이 아님을 늘 강조한다. 기성용은 “평소에도 무뚝뚝한 편이지만 요즘에 더 그렇다. 아마 내가 부담을 느낄까봐 그러시는 것 같다”며 “아버지랑 짧게나마 통화하고 나면 든든해진다”고 말했다. ○힘들 때 아내와 아들이 있었기에(정성훈) 카타르 출국 직전 11일 인천국제공항. 정성훈의 아내 박연희(28) 씨가 네살배기 아들과 함께 공항을 찾았다. 먼 길 떠나는 남편을 위해 그녀는 직접 만든 초콜릿과 정성들여 쓴 편지를 준비했다. 잠시 후 공항에 도착한 정성훈은 깜짝 놀라며 “부산 집에서 밥 먹고 있다고 했잖아. 여기까지 오지 말라니까”라고 눈을 흘기면서도 금세 환한 얼굴로 아들을 번쩍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최전방 공격수인 정성훈이 중앙 수비수로 기용되던 때. ‘선수생활을 계속 해야 하나’라고 고민하던 그에게 아내는 작은 것부터 고쳐나가자고 권했다. 좋아하던 술을 시즌 중에는 절대 마시지 않기로 약속한 것도 이 즈음이다. 박연희 씨는 “연애를 오래해서인지 결혼 직후 오빠는 크게 책임감이 없었다. 하지만 힘들 때 아기가 태어나면서 달라졌다. 요즘은 특별히 잔소리할게 없는 모범 남편이다”며 “경기 없는 날 가끔 집에서 함께 치킨에 맥주 한 잔 하는 건 봐주고 있다”고 웃었다. 정성훈이 출국장에 들어서는 순간, 아들 의준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 빨리 가셔야 돼. 아빠가 장난감 사 오실 거야.” 아내의 다독임에도 눈물을 그칠 줄 모르는 의준이. 정성훈은 “출장 때마다 늘 있는 일이라 신경 쓰지 않는다”고 애써 담담해 하면서도 “아내와 아들을 봐서라도 이번에 출전하면 반드시 골을 넣고 싶다”며 연신 뒤를 돌아다 봤다. 도하(카타르)|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