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큰형덕에이룬‘선생님꿈’

입력 2008-11-19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1


저는 올해 마흔 일곱, 그리고 제가 가장 믿고 잘 따르는 큰형은 올해 쉰일곱입니다. 나이가 이렇게 열 살이나 차이가 났기 때문에 저는 어릴 때부터 큰형이 늘 어렵고 무섭기만 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시절, 저보다 한두 살 많은 저희 동네 형들에게 몹시 많이 맞았던 적이 있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큰형을 찾아갔습니다. 그 앞에서 아주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때 제 맘속에는 ‘이제 우리 큰형이 그 동네 형들 찾아가서 다 때려줄 거야. 이제 다 죽었어∼’ 하며 큰형의 복수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형은 오히려 저를 야단치며 “이런 바보 같은 자식. 맞질 말던가, 맞았으면 울질 말아야지. 남자가 질질 짜기나 하고 나가서 다시 싸워 이기고 와” 이러면서 저를 밖으로 내쫓은 겁니다. 억울하게 맞고 들어온 것도 서러운데, 큰형이 제 편을 들어주지 않자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제가 6학년 마지막 겨울 방학을 보내고 있을 때, 형이 그랬습니다. “너 초등학교 6년 동안은 실컷 놀았으니까 이제부터 공부해. 형이 매일 도서관 입장료 10원을 줄 테니까 놀더라도 도서관 안에서 놀아”이러면서 저를 도서관에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살던 제주시에는 ‘제주시립도서관’이 있었는데, 입장료가 10원이었습니다. 도서관 밖을 나갔다 다시 들어오면 또 10원을 내야만했습니다. 저는 심심해 죽겠는데도 밖에 나가지도 못 하고 도서관에서만 놀았습니다. 그렇게 놀다보니까 저희 반의 반장과 부반장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전교에서 1,2등 하던 녀석들인데, 도대체 무슨 공부를 저렇게 재밌게 할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도 어느새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공부의 재미에 빠지다 보니 저도 모르게 6학년 전 과정을 독학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중학교에서 치른 첫 시험에서 전교 10등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가정형편 때문에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해야만 했습니다. 거기서 기술 배우며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하루는 제 친구가 “우리학교 선배들보니까 고등학교만 졸업해서는 희망이 안 보이더라. 회사에서 대우도 못 받고 월급도 쥐꼬리만큼 받는대. 월급 타서 가족들 속옷 몇 벌 사주면 하나도 안 남는대” 하면서 제 생각하곤 너무나 다른 선배들의 실상을 얘기해줬습니다. 그 순간 예전부터 꿈꿨던 제 꿈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오랜 고민 끝에 큰형에게 솔직한 제 마음을 얘기했습니다. “형∼ 나 대학가고 싶어. 대학가서 선생님이 됐으면 좋겠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형은 좀 놀라는 것 같았고, 잠시 후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한번 해봐. 방세 하고 입학금은 형이 어떻게든 마련해줄게”했습니다. 그 당시 형은 박봉을 쪼개어 부모님께 생활비로 드리고, 제 위에 두 누나들의 학비와 용돈을 대고 있었습니다. 형은 싫은 내색 한번 안하고 박봉을 쪼개어 제 월세를 얻어주고, 제가 주경야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전 인문계 학생들이 배우는 책을 헌책방에서 구해 공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덕에 저는 당당하게 4년제 사범대학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형은 지금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농부로서 살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형 집을 찾아 고구마도 같이 캐고, 저녁 늦게 소주나 한잔 기울이며 옛날 얘기를 할까 합니다. 제게는 너무나 큰 힘이 되어주었던 큰형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경기 가평 | 최병용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