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인정이넘치는곳재래시장

입력 2008-11-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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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 겨우 스무 살이지만, 왜 이렇게 취향이 ‘옛날식’인지 모르겠습니다. 결혼한 언니만 해도 장볼 게 있으면 마트에 가는데, 저는 엄마랑 같이 시장에 가는 걸 더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도 할아버지 제사를 앞두고 엄마랑 같이 시장에 갔는데, 시장 사람들이 어찌나 활기가 넘치는지, 추운 것도 몰랐습니다. 저는 엄마 뒤를 따라다니며 정신없이 시장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머릿속으로 필요한 재료들을 생각하며 장을 보셨고, 마지막엔 생선만 사면 된다면서 발길을 옮기셨습니다. 그런데 방향이 어시장하고는 반대방향인 겁니다. “엄마. 그리로 가면 시장 밖으로 나가는데? 어시장은 뒤쪽이야∼” 했더니 “아녀, 나가 시방 어시장 가려는 게 아니고, 누굴 좀 찾느라 그려. 이상허다. 분명 여기 어디쯤 있을틴디…” 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갔는데, 저 멀리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빨간 대야를 놓고, 생선을 팔고 계셨습니다. 엄마는 그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으매∼ 나는 어째 올 적마다 헷갈린다요∼ 시방도 네 번째 오는 건디, 또 헤매부렀네∼” 하셨고, 할머니는 “아이고∼ 이래 찾아와 주는 것도 고마운 것이재∼ 저번에도 어두워질 때쯤 왔었재? 내가 다 기억한당께∼” 하며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엄마는 그 할머니를 어머니라 부르며 “엄니, 이번 주 토요일이 시아부지 제산디요. 워떤 놈이 좋을까요잉? 우리는 먹을 사람도 없고, 많이 해봐야 자리만 차지헐틴디, 거따가 지 신랑이 입이 짧아가꼬, 뭘 해 놔도 많이 묵질 않혀요∼” 했더니 “그랴도 제사 상에 올릴 꺼는 큰놈으로다가 혀야지잉∼ 이 놈은 내가 만 원에 팔던 건디, 팔천 원에 가져가고, 저 짝 작은 놈들은 반찬으로다가 쪼매만 사가∼” 하셨습니다. 두 분은 정말 어머니와 딸처럼 생선을 놓고 이게 더 좋을까, 저게 더 좋을까, 한참 상의하시더니 적당한 걸로 몇 마리 고르셨습니다. 할머니는 작은 의자에 앉아 생선을 손질하시고, 엄마는 그 맞은편 쪼그리고 앉더니 “저 짝 길은 사람이 많응께 장사도 수월헐틴디 여그는 댕기는 사람이 없어서 힘들지요잉?” 했더니 “그러게 말여∼ 날이 추워 그런가 이짝은 사람도 없어∼” 하셨습니다. 잠시 후 생선들이 모두 손질되고, 할머니는 검은 비닐봉지에 생선을 담으시더니 소금을 한번 더 듬뿍 치셨습니다. “이따 요놈들은 6시쯤에 씻어놔∼ 안 그라믄 짜서 못 먹응께∼” 그러자 엄마도 “야∼ 엄니가 손질을 잘해준께 먹기가 엄청 편해유∼ 다음에 또 올팅께 그 때 꺼정 많이 파쇼잉∼” 하고 돌아서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엄마 표정을 보니까 너무 즐거워보였습니다. “엄마. 저 할머니랑 잘 알아?”했더니, “알긴 뭘 알으야∼ 그저 생선팔아주믄서 몇 마디 허는 게 전부재. 생각혀봐라. 저 연세에 저래 나와가꼬 을매나 고생이 많것냐. 내가 니 외할머니 생각하믄서, 그냥 오며가며 팔아주는 거여∼”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아∼ 이게 사람 사는 정이구나.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정이 오가는 게 얼마나 따뜻한지 가슴이 저절로 훈훈해졌습니다.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장사하는 분들 많이 힘들 텐데… 여전히 덤을 얹어주면서, 또 오라고 인사하는 분들을 보면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그 모습 보면서 작은 일에 힘들다고 불평불만 늘어놓던 제 자신을 반성합니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시장에 다녀오면 그런 마음이 저절로 듭니다. 전남 나주 | 이유리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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