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효진·김민희·배두나-이요원·신민아´차이점´

입력 2008-12-14 08:52: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이문원의 문화비평 배우 공효진이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비평계 찬사를 받은 영화 ‘미쓰 홍당무’를 통해서다. 한편, 같은 상 후보에는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열연했던 김민희가 있었다. 김민희는 이미 ‘뜨거운 것이 좋아’로 백상예술대상과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바 있다. 이들 둘은 공통점이 있다. 1990년대 후반, 물밀듯이 밀려온 ‘틴 패션모델’ 출신이라는 것이다. 10대 소녀들이 새로운 소비주체로 떠오름에 따라 수 없이 발간된 각종 틴 패션잡지들을 장식한 이들이다. 여기에 한 명을 더 붙이면 라인업이 완벽해진다. 최근 사진 에세이집 ‘두나’s 서울놀이’로 또 다시 서점가를 강타한 배두나다. 배두나는 이들 중에서 가장 먼저 연기력을 인정받은 경우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을 2년 연속 수상한 바 있고, 춘사영화제 여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도 수상했다. 결국, 까불거리고 발칙한 태도로 주목받은 이들 틴 모델들이 10년이 지나자 일제히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추세다. 이들 외에도 더 있다. 이요원은 안방극장의 차세대 주역으로 이미 자리 잡았다. 덜컥거리는 커리어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신민아 역시 영화계에서 분투 중이다. 배두나, 공효진, 김민희, 이들 틴 모델 출신 배우들은 사실 상 동세대 다른 영화스타들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이들은 정확히 말해, ‘스타산업’의 구조 내에서는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커리어를 일관해 왔다. 가장 주요한 것이 ‘메인스트림 영화’에 대한 집착이 없다는 점이다. 상업영화로 스타덤을 유지하겠다는 전략도 없었다. 주연급에 대한 집착조차도 없다. 배두나는 스타로서의 커리어가 막 발동하던 시점에 독립영화(‘고양이를 부탁해’), 비상업적 영화(‘복수는 나의 것’) 등을 골랐다. 일본영화 ‘린다 린다 린다’에 출연하기도 했다. ‘괴물’에서는 조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공효진은 더 심하다.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가족의 탄생’, ‘엠’ 등 비상업적 프로젝트에 더 열성이었다. 딱히 상업영화를 고르기가 더 어려운 상황이다. 단역에 가까운 역할도 많았다. 상대적으로 연기 커리어가 일천한 김민희조차도 영화계 데뷔는 예술영화 ‘순애보’로 시작했다. 이들이 이렇듯 기묘한 커리어를 쌓아가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먼저, 그런 게 그녀들의 콘셉트였다. 이들은 주류적 기성사회 질서에 대한 반발적 이미지로 떴다. X세대 개념이 ‘허당’이었음이 드러나고, 세기말에 이르러 차세대 아이콘을 선정해야 했을 무렵, 이들은 일제히 ‘우리는 달라요’라는 콘셉트로 달려들었다. 낙서한 듯한 옷, 플라스틱 장신구, 엉뚱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들의 외모 역시 주류적인 ‘미인’의 기준에선 벗어나 있었다. 대중문화계 역시 이들을 같은 방식으로 소화했다. 도저히 주류적으로는 이들을 받아들일 방도가 없었다. 이들의 영화계 데뷔작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공효진은 ‘여고괴담-두 번째 이야기’에서 비속어를 쏟아내는 반발심 강한 톰보이로 등장했고, 김민희는 ‘순애보’에서 머리를 새빨갛게 물들인 펑크 소녀로 등장했다. 배두나는 ‘링’에서 양성구유의 ‘귀신’(!)으로 데뷔했다. 주류 사회 ‘바깥 편’의 아이들이었던 셈이다. 이들의 TV드라마 커리어가 만만치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며 기성적 콘셉트가 많은 TV드라마에서는 이들이 지닌 독특한 이미지와 위상을 제대로 살려줄 수 없었다. 그나마 엽기적 캐릭터를 잡은 배두나의 ‘위풍당당 그녀’ 정도가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그런 역할이 TV드라마계에서 자주 나올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들은 천천히, 보다 반기성적 콘셉트가 환영받는 영화계로 자기 위치를 굳혀갔다. 지금 얻게 된 ‘차세대 연기파 배우’ 딱지는 이런 일련의 커리어에서 비롯된 셈이다. 여기서 새롭게 주목해 봐야 할 부분이 있다. 이런 식의 비주류적 프로젝트로 일관하면 결국 보답은 돌아온다. 연기력 향상은 타고난 재능보다 적절한 트레이닝에 달려있다. 쪽대본 받아가며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촬영분을 해치우는 것보다, 몇날며칠 동안 감독과 상의하며 캐릭터를 만들어가다 보면 어느덧 성숙한 연기자로 이끌어지게 된다. 문제는 ‘그 동안’이다. 비주류적 프로젝트에서 주조연을 마다않고 매진하다 보면 스타성이 심각하게 훼손된다. 결국 상업적으로 자기 위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배우는 뒤처지게 돼있다. 그런 위험 때문인지 이들 역시 ‘튜브’, ‘천군’, ‘서프라이즈’ 등의 상업영화에서 별 의미 없는 인형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각종 비주류적 프로젝트와, 몇 안 되는 상업영화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아 계속 영화계에서 자기 위치를 만들어내고, 현재의 위상까지 이르렀다. 그 비결은 뭘까. 이들이 지닌 아이콘성 덕택이다. 패셔니스타라는 새로운 별칭으로 등장한 개인적 위상 때문이다. 나아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대중에게 다가가 굳건히 자기 위치를 만들어냈다. 이들은 활동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언제나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사진뉴스가 포털사이트의 최대 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현 미디어 상황에서, 각종 패션쇼나 시사회장에 등장한 이들 패셔니스타의 차림새는 늘상 눈길을 끌게 된다. 상대적으로 바깥나들이가 뜸한 배두나는 신세대 감수성을 대변하는 사진 에세이집으로 공백 기간을 오히려 더 화려하게 채색했다.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은 동세대 여성층에게 동경의 대상이 됐다. 유행의 첨단을 달리고, 구질구질하지 않은, 현대적이고 도회적인 연애 스캔들을 일으키며, 자유롭게 해외를 넘나들며 자기 삶을 즐긴다. 고전적인 고혹적 미로 승부한 전지현, 보다 더 고전적인 ‘청순가련형’으로 일관하는 손예진 등, 동세대 다른 여성 아이콘들과 달랐다. 이들 ‘고전적 섹스심벌’들은 콘텐츠 성공률이 낮아지면 곧바로 버림받지만, ‘라이프스타일의 선두주자’들은 경우가 다르다. 실패해도 카리스마가 남는다. 이 독특한 위상을 안전장치 삼아 별 눈치 보지 않는 자기 커리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유지되면 커리어 자체에는 막힘이 없게 된다. 반면 기성 영역으로 들어가려 애썼던 같은 다른 ‘틴 모델’ 출신들은 여러 어려움을 맛 봤다. 가장 기성적인 안방극장으로 입성한 이요원은, 결국 안방극장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배우가 됐다. ‘광식이 동생 광태’, ‘화려한 휴가’ 등의 성공작에 출연했지만, 그녀의 존재감은 너무도 미약해 자립적으로 설 수 있으리라는 예상을 하기 힘들다. 신민아는 영화계에서 주류적 스탠스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화산고’, ‘마들렌’, ‘새드 무비’, ‘야수와 미녀’, ‘무림여대생’ 등 노골적 상업영화들에 출연했다. 그러나 영화계 데뷔 8년차에도 그녀의 위치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모두 아슬아슬하다. 근작 ‘고고70’에서도 그녀 위치는 미묘했고, 영화는 실패했다. 이들에게서는 ‘라이프스타일의 선두주자’ 이미지를 찾기 어렵다. 기성적 활동영역으로 들어가면 개인적 신비감과 카리스마는 사라지는 법이다. 이들은 모두 ‘실패’가 곧 ‘퇴출’로 이어지는 길을 걷고 있다. 1990년대 후반의 틴 모델들은 ‘대단히 특별한 위상’을 등장 즉시 얻게 된 이들이다. 그리고 몇몇은 이를 잘 살렸다. 특별한 시대가 낳은 특별한 현상인 셈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모든 시대는 특별한 시대다. 그 시대가 원하는 아이콘은 언제나 존재한다. 자기 시대를 대변하는 아이콘이 어떻게 자기 커리어를 이끌어가는 지에 따라 스타산업의 ‘원칙’은 얼마든지 깨질 수 있다. ‘실패해도 살아남아 영광을 얻은’ 이들 세 패셔니스타들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서울=뉴시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