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Black&White]프로기사들의소감이재밌어졌다

입력 2009-01-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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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대상은 한국기원이 매년 시상하는, 바둑계에서는 가장 오래되고 정통성이 있는 시상식이다. 영화의 ‘대종상’, 야구의 ‘골든글러브’와 성격이 비슷하다. 실제로 2003년 처음 이 상을 기획할 때 이들을 벤치마킹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바둑대상을 치르면서 바둑계는 한 해의 농사를 끝낸다. 그런 점에서 연말이 아닌 이듬해에 치른다는 점이 옥의 티이긴 하지만 축구, 야구와 달리 바둑은 12월 31일이 공식적인 시즌 만료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한국기원은 기존의 바둑문화상을 2003년부터 바둑대상이란 이름으로 대폭 확대해 개최하고 있다. 한국기원 2층 대회장에 철제의자를 깔아놓고 수상자들을 불러다가 덜렁 트로피 하나만 안기던 바둑문화상을 폐하고, 특급호텔에서 수상 후보자들과 바둑계 인사들을 총동원해 폼 나게 열고 있다. 시상식은 바둑TV를 통해 녹화중계가 되기도 한다. 이번 시상식을 지켜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우리 프로기사들 참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수상소감이 ‘들을 만’해졌다! 불과 수 년 전만해도 프로기사들의 소감이란 것은 그야말로 뻔했던(?) 것이다. 대국 전이라면 “좋은 기보를 남기고 싶다”, 대국 후에는 “운이 좋아 이길 수 있다”, “내용이 안 좋았는데 상대가 실수를 해줘서 …”가 소감의 9할을 차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확 달라졌다. 진부한 소감 멘트의 ‘대부’였던 이창호부터가 변했다. 지난 2007바둑대상 시상식에서 이창호는 “올해는 이세돌을 겁나게 해 주겠다”라는, 이창호답지 않은 과격한(?) 발언으로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연승상을 받기 위해 무대에 올라온 이창호에게 사회자가 물었다. - 올해도 이세돌 9단을 무섭게 해 주실 계획이신가요? “작년에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것 같다. 올해는 (이세돌이) 좀 봐 줬으면 좋겠다.” 이창호의 대답은 좌중을 크게 웃겼다. 이창호는 박지은과 함께 네티즌이 선정한 인기기사상을 받았다. 이 두 사람은 6년 연속 이 상을 받고 있다. 사회자가 팬들의 한결같은 사랑을 언급하며 또 물었다. 약간은 짓궂은 질문이었다. - 한 사람한테 사랑을 받는 것과 다수의 여성팬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 중 어느 쪽이 나은가요? “한 명이 좋죠.” 이창호의 대답은 시상식에 참석한 모든 이들을 뒤집어지게 만들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되었듯 이창호 9단은 한 여인과 열애 중이다. 마이크 앞에만 서면 목소리가 떨려 ‘새가슴 멘트’로 유명한 박지은도 이날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인기기사상이 없어지지 않는 한 영원히 받고 싶어요.” 2년 연속 감투상을 수상한 ‘괴동’ 목진석의 소감은 어땠을까? “내년엔 여자기사상만 빼고는 다 받아보고 싶다.” 프로기사들의 이런 변신은 팬들뿐만 아니라 기자들에게도 대환영이다. 앞으로도 프로들의 톡톡 튀는 ‘어록’들이 대량 쏟아졌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목진석은 몰랐나 보다. 바둑대상에는 여자기사상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기사상도 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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