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박진만은박기혁?

입력 2009-02-24 14:4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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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난세에 난다고 했던가? 김동주의 부상은 꽃범호를 낳았고, 오승환의 컨디션 저하는 정대현의 짜릿한 끝내기 병살타를 탄생시켰다. 본국이 부러워했던 내야 사령관이 떠난 자리에 김인식 국가대표 감독은 박기혁을 지명했다. 외국인의 눈에는 같은 성의 같은 선수로 오인할지 모르겠지만, 실제 실력까지 같은 선수로 오인할 만한지, 운명은 이제 본인에게 달렸다. 진갑용-이승엽-김종국-이범호-박진만-이병규-이종범-이진영-최희섭. 이런 식으로 이어졌던 1차 WBC 국가대표는 3년 만에 박경완-김태균-고영민-최정-박기혁-김현수-이종욱-추신수로 싹 바뀌었다. 안방을 차지한 박경완을 제외하면 대부분 훨씬 젊은 선수로 세대교체를 이룬 셈이다. 유일하게 서른 중반으로 접어드는 나이에도 대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유격수가 이번 박진만의 부상 낙마로 세대교체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지난해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공격력을 갖춘 유격수로 성장한 박기혁, 도하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 탈락의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군 입대 전까지 ‘포스트 박진만’의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손시헌, 아직 국가대표로 선정된 바는 없지만 꾸준히 그 언저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나주환 가운데 김인식 감독은 박기혁을 새로운 주전 유격수로 꼽았다. 지금은 고만고만한 도토리 키재기에서 살짝 삐져나온 정도지만, 만일 이번 WBC를 통해 ‘박기혁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그 이후의 평가는 하늘과 땅으로 벌어지게 된다. 그동안 박기혁과 국가대표의 추억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앞서 도하 아시안게임을 잠시 언급했지만, 당시 박진만의 백업 유격수 한 자리를 놓고 손시헌과 그야말로 전쟁을 치렀던 박기혁은 결국 김재박 전 감독의 최종선택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뒷말을 남기며 도하 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아마추어로 대표팀을 이룬 일본과의 경기에서 평범한 플라이를 잡지 못해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는데 한 축을 담당했고, 우리나라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금메달을 차지하지 못하고 망신만 톡톡히 당했다. 박기혁은 그 이래로 국가대표에 단 한 번도 선발되지 못했고, 손시헌은 아시안게임 이후 쓸쓸히 상무에 입대했다. 스물아홉 박기혁에게는 이번 WBC가 엄청난, 하지만 어쩌면 마지막을 각오해야 하는 대회가 될 것이다. 45인 엔트리에 손시헌과 나주환이 포함돼 향후 부상선수가 발생하느냐에 따라 추가 승선의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다른 포지션이라고 여유 있는 곳은 없기 때문에 말 그대로 심각한 부상 선수 발생이 아닌 한 박기혁의 주전 유격수 발탁은 김인식 감독이 공헌한 대로 이뤄지게 됐다. 정근우, 최정의 유격수 기용은 소속팀에서도 긴급 상황이 아닌 이상 나오지 않는 카드인 만큼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될 말이다. 이종범이 있었기에 유지현도 국가대표에서는 2루 이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박진만이 건재했기에 우리는 유격수 자리에 대해서는 큰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다. 지난 1차 대회에서는 박진만과 비교해도 크게 손색이 없는 두 수비수 김민재와 김재걸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들을 부를 처지도 되지 않는다. 박기혁, 정근우, 최정, 좀 더 확장시켜서 손시헌과 나주환까지. 속된말로 고만고만한 선수들이 쭉 늘어져 꼭 어떤 팀의 내야를 연상시키는 국가대표 유격수. 우리가 그들에게 내야 야전 사령관으로써의 중심을 잡아주길 기대할 수 있을지. 여기에는 지난해 .291를 쳐내며 전력이 급상승한 박기혁에게 70%이상이 달려있다. 박기혁의 글러브질에 또 다시 4강 진출을 노리는 한국의 운명과 예상을 깨고 과감히 박진만을 포기한 김인식 감독의 용병술이 달려있다. -엠엘비파크 유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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